힘든 오후, 단게 당기시나요?…'기분 탓' 아니라 호르몬 때문
동물은 수분이 부족하면 갈증을 느껴 물을 마시고, 혈당량이 떨어지면 단걸 찾는다. 체내에서 합성되지 않는 필수 영양소가 부족해지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행동이다. ‘당 떨어진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가 있는 말이다.

수분과 당만큼 중요한 게 단백질이다. 단백질은 20여 종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10여 개는 인체가 스스로 합성하지 못하는 필수아미노산(EAA)이다. EAA는 음식물과 장내 세균을 통해서만 보충된다. 인체는 EAA 결핍을 인지해 부족한 EAA를 더 많이 섭취할 수 있도록 식성을 바꾸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화론적으로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인체가 어떻게 EAA 결핍을 인지하는지, 인지 후 어떤 과정을 통해 식성을 변화시키는지에 관한 설명은 명쾌하게 제시된 적이 없다. 필수아미노산 항상성은 수분이나 당 항상성보다 복잡하다. 예를 들어 코알라는 주된 먹이인 나뭇잎의 섬유질을 직접 소화하지 못하고, 장내 미생물이 나뭇잎을 분해해 흡수 가능한 영양소로 만들면 그때서야 소화한다. 장내 미생물 종류에 따라 분해할 수 있는 나뭇잎이 달라지기 때문에 코알라마다 식성이 조금씩 다르다.

서성배 KAIST 생명과학과 교수(사진)와 이원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공동연구팀은 동물이 EAA 부족을 감지하고 섭취를 조절하는 섭식 원리를 세계 최초로 규명해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실었다고 7일 발표했다.

연구팀은 초파리에 다양한 EAA 결핍 상황을 유도한 뒤 생리학적 변화를 분자생물학 기법으로 조사했다. 예를 들면 EAA를 생산하지 못하도록 유전자를 조작한 장내 미생물을 초파리에 넣는 식이다.

연구 결과 EAA가 결핍되면 초파리의 장 호르몬 중 하나인 ‘CNMa’ 호르몬이 장 상피세포에서 분비되고, 이것이 장 신경세포를 활성화하면서 뇌에 신호를 보내 해당 EAA를 섭취하도록 식성을 바꾼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장 상피세포가 EAA 결핍을 직접 인지한다는 뜻인데, 이는 내분비세포에서 장 호르몬이 발현된다는 기존 인식을 뒤엎는 연구 결과다.

서성배 교수는 “체내 EAA 부족과 결핍 인지 후 식성 변화 과정을 분자적 수준에서 규명한 첫 논문”이라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지난 10여 년간 탄수화물 영양소를 감지하는 체내 센서와 이 센서가 두뇌와 연관되는 원리를 연구하다가 단백질로 범위를 확대해 이 같은 성과를 냈다.

연구팀은 CNMa 호르몬이 발현되는 과정에서 기존 세포 내 ‘아미노산 센서’로 알려진 Gcn2와 Tor 효소가 관여한다는 사실도 증명했다. 두 효소가 CNMa 호르몬 분비를 유도하는 스위치 역할을 한다는 설명이다.

서 교수는 “모든 개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영양소 센서는 진화론적으로 보존되고, 초파리에서 밝혀진 센서들은 기타 포유류에서도 비슷한 역할을 할 것으로 추측된다”며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같은 거대 영양소뿐 아니라 비타민, 아연 등 소량 영양소 역시 센서와 뇌 사이에 소통 시스템이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원재 교수는 “EAA 결핍 인지 시스템 장애는 비정상적인 섭식 행동을 유발할 수 있고, 이는 비만과 당뇨 등 중요한 대사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며 “이번 연구 성과가 대사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신약 개발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용한 물질을 생산하는 동물이나 곤충의 식성을 조절해 경제적 가치를 높일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해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