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의 끝에 '조사 대상 아니다' 판단…"관행개선 필요" 별도 의견표명
인권위, '남아 파랑-여아 분홍 구분은 성차별' 진정 각하
국가인권위원회가 '여아는 분홍색, 남아는 파란색'으로 정해놓은 영유아 제품 색깔과 그에 따른 성별 표기로 아이들이 성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의 진정을 1년여간 검토한 끝에 각하하고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표명을 냈다.

각하란 진정이 형식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사건을 조사·검토하지 않고 돌려보내는 결정으로, 인권위는 정치하는엄마들의 진정이 국가인권위원회법상 조사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지난해 1월 "영아용 젖꼭지부터 영유아복, 칫솔·치약, 연필 등 문구류, 완구류까지 성차별적인 성별구분 때문에 아이들이 권리를 침해받고 있다"며 영유아 상품 제조사 8곳을 상대로 진정을 냈다.

인권위는 1년여간 사건을 전원위원회에 세 차례나 상정하며 논의한 끝에 '차별행위'가 실제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이유로 각하 결정했다.

인권위는 4일 공개한 결정문에서 "피진정인들(제조사들)이 기업의 상품 판매 전략에 따라 상품의 색깔을 성별구분 기준으로 삼아 상품에 성별을 표기하고 있으나 이로 인해 해당 상품을 구매하는 행위, 즉 소비자가 해당 재화를 이용하는 데 제한이 있거나 차이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제품에 분홍색-여아 표기가 있더라도 실제 여아가 분홍색 제품만 구매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파란색-남아 제품을 살 수도 있으므로 불이익이나 배제가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다만 인권위는 영유아 제품의 색깔 구분으로 인해 성역할 고정관념이 강화되고 사회적 편견으로 이어지는 등 부정적 영향이 크다는 것을 인정하고 "기업들의 관행 개선이 필요한 사안"이라며 각하 결정과는 별도로 의견표명을 냈다.

인권위는 색깔에 따른 성별구분이 1980년대부터 시작된 비교적 최근의 관행이라는 점, 아이들의 미래 행동과 가치관에 영향을 준다는 점, 해외에선 성별 구분이 사라지고 성중립(gender-neutral) 상품이 늘고 있다는 점 등을 언급하며 "기업도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성중립적 방향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편 피진정인인 제조사 8곳은 모두 "상품 색깔에 따른 성별 표기를 삭제했고 향후에도 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