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여섯 개의 폭력'

최근 스포츠계와 연예계를 뒤흔든 '학교폭력' 폭로 사건들에서 보듯 어린 시절 '폭력 피해'는 오랫동안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된다.

일부 사건에서는 가해자로 지목된 유명인들이 '허위 폭로'라고 맞서 법적 다툼으로 번지기도 했지만, 학교나 가정에서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적지 않음은 분명하다.

씻기지 않는 아이들의 상처 '폭력 피해'…힘겨운 고백의 기록
출판사 글항아리에서 펴낸 신간 '여섯 개의 폭력'은 학교 폭력 피해에도 '무사히' 어른이 된 다섯 사람과, 어른이 되지 못한 한 사람의 엄마가 쓴 책이다.

이 출판사 편집장인 이은혜, 황예솔 작가, 조희정 사회복지사, 이모르 크리에이터, 김효진 마르코폴로 편집장은 20~30년 전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꺼낸다.

이들 5명의 고백을 보면 교실에서 흔히 봐온 아이들이 말 못 할 고통에 놓여 삶을 접을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은 '장난'이라거나 혹은 '그냥 싫어서' 자행됐으며 이후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학교를 졸업했기에 사과와 용서 같은 일은 이뤄지지 않았다.

선생님이나 부모가 보호자 역할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르나, 그들은 종종 무대 바깥의 관객이 되거나 때로는 가해의 무리에 섞이기도 했다.

가해자들은 저마다 이유를 댄다.

교실 속 수십 명 가운데 유독 눈에 거슬리거나, 마음에 안 드는 것인데, 책 속의 십대 들은 '성적이 좋아서', '수줍음을 많이 타서', '게임 아이템을 도난당해서', '장애인의 동생이라서', '뚱뚱해', '만만해서' 등의 이유로 괴롭힘을 당했다.

이은혜 편집장이 28년 전에 경험한 열여덟 살 때의 피해는 생생하게 기록된다.

"성적이 K보다 좋았던 나는 교과서와 참고서를 압수당해 찢기곤 했다.

성적표가 나오는 날엔 폭력이 자행됐다.

(중략) 성적표가 나오는 날 자신이 바라는 만큼 내 성적이 떨어지지 않으면 그 애는 크게 화를 냈고, 골목 같은 데로 나를 몰아붙였다.

고성과 발길질이 가해지던 날 지나가던 중년 아저씨가 우릴 보고 타일렀다.

하지만 '아저씨가 뭔데? 상관 말고 꺼져'라는 말을 듣자 아저씨는 몹시 놀란 나머지 재빨리 그곳을 떴고, 나는 구원자가 될 뻔한 사람을 놓친 후 오히려 그의 훈계 때문에 더 화가 난 K의 분풀이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
10년 전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렸던 대구 중학생 집단 괴롭힘 자살사건 피해자의 어머니 임지영 씨는 사건 이후 10년 동안의 일기 뭉치를 꺼내놓는다.

잘 울지 않는 그녀는 일기에서 울고, 가해자들의 사과 없음에 원통해 하며,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을 힘들어한다.

하지만 현재 죽은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기록이기 때문에 계속해나간다.

아들의 죽음을 상기시키는 학교라는 곳에 매일 출근해야 하는 교사인 임씨는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아들의 유서를 언론에 공개했고,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 학교폭력의 중대성을 알리는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

서문을 쓴 작가 은유는 이 책을 "여섯 개의 자책, 여섯 개의 외면, 여섯 개의 용기로 읽었다"고 말한다.

폭력을 당하는 아이들의 첫 물음은 '왜 하필 나인가'이다.

자아존중감을 키워야 할 성장기에 자기 부정의 인자를 심어놓는다는 점에서 학교폭력은 가장 나쁘고 끈질긴 폭력이라고 강조한다.

또 이들이 당한 폭력은 '가해-피해' 구도가 아니다.

가해자, 피해자 외에 방관자가 있을 때 성립된다는 점에서 침묵과 외면이 가슴 아프게 한다.

아울러 필자들은 과거를 똑바로 직시하고 두려울 것 없는 대담함으로 써 내려갔다.

고통을 전시하려는 게 아니라 고통으로 우리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보여주기 위함으로 읽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