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명 목숨으로 촉발된 '중대재해처벌법'…이천 참사 재발 막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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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물류창고 화재 1주기…용접 불티가 대형 화재 이어진 전형적 인재(人災)
전문가 "발주자 책임 면제 아쉬워…점진적으로 규제 강화해야"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한익스프레스 남이천 물류창고 화재가 발생한지 1년이 지났다.
6일간의 황금연휴를 하루 앞둔 2020년 4월 29일 이천시 모가면 공사 현장에는 67명의 작업자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대부분 설비, 도장, 전기 등 각 분야의 하청업체에 속한 직원들이었다.
공기 단축을 위해 당초 예정보다 두 배 많은 인력이 현장에 한꺼번에 투입된 상황이었다.
그러던 오후 1시 32분 별안간 검은 연기와 불꽃이 지하 2층 지상 4층의 1만1천여㎡ 건물을 뒤덮기 시작했다.
용접 불티가 원인이었다.
천장 벽면 속 도포된 우레탄폼을 따라 불씨가 이리저리 이동한 탓에 작업자들은 불길이 치솟기 전까지 화재 사실을 알지 못했다.
순식간에 연기로 뒤덮인 건물 내부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이 현장 유해위험방지계획서에는 지하 2층에서 화재 등 위험 발생 시 기계실로 통하는 방화문을 거쳐 대피하게 돼 있지만, 현장에서는 아예 방화문을 만들지도 않았다.
게다가 방화문이 들어갈 공간을 비워두면 결로가 생길 수 있다는 이유로 이를 벽돌로 막기까지 했다.
이 때문에 지하 2층에 있던 작업자들은 쌓인 벽돌을 뚫어보려다 결국 숨졌다.
지상 1층부터 옥상까지 연결된 옥외 비상계단은 설계와 달리 외장이 패널로 마감돼 오히려 불길이 확산하는 통로로 전락했다.
이에 지상층 작업자들은 대피로를 빼앗겨 인명피해가 커졌고, 특히 지상 2층의 경우 투입돼 있던 작업자 18명이 모두 숨지기도 했다.
이날 화재로 목숨을 잃은 작업자는 38명, 후유장해가 남을 정도의 중상을 입은 작업자는 10명에 달했다.
최근 10년간 이보다 더 많은 사망자가 나온 화재 사고는 45명이 숨진 2018년 밀양 세종병원 화재뿐이었다.
지난해 말 이천 화재 사고에 대한 첫 판결이 내려졌다.
시공사 건우 현장소장에 징역 3년 6개월, 같은 회사 관계자에겐 2년 3개월, 감리 관계자에겐 1년 8개월 형이 선고됐다.
반면 발주처인 한익스프레스 측 팀장은 금고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아 실형을 면했다.
유가족들은 "재발 방지를 기대할 수 없는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반발했다.
이에 정치권은 재발 방지 대책으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법)'을 꺼내 들었다.
노동자의 사망사고 등이 발생했을 때 예방책임을 다하지 않은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기업을 처벌하는 것을 골자로 지난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이 법안에 따르면 노동자 1명이 숨지거나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는 중대 재해가 일어날 경우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가 산재 예방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 등 규정된 안전 조치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나면 1년 이상의 징역형이나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외에 법인이나 기관도 주의·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날 경우 최대 50억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그러나 노동계에서는 중대재해법이 여전히 현실과 괴리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을 예외로 두고 있어 산재에 취약한 소규모 기업들이 사각지대에 놓일뿐더러 건설공사 발주자를 처벌 대상에 포함한 조항이 빠지면서 발주처의 공기 단축 요구 등이 사고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현행 중대재해법으론 발주자가 공사 기간 단축을 강요할 경우 실무자들은 무리하게 동시 작업을 진행하는 등 안전 지침을 어길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이천 화재도 이 같은 동시 작업 중에 일어난 참사인 만큼 발주자에게 더 강한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5인 미만 사업장은 처벌에서 제외된 만큼 이들에 대해 별도의 교육과 안전관리가 지원돼야 할 것"이라며 "이 법으로 재계가 지나치게 위축되지 않도록 모범 기업에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등 보완책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류상일 동의대 소방방재행정학과 교수는 "발주자가 처벌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아쉽지만 규제 수위를 급하게 높일 경우 사회적 비용 등 여러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본다"며 "사회적 합의를 통해 규제가 점진적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전문가 "발주자 책임 면제 아쉬워…점진적으로 규제 강화해야"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한익스프레스 남이천 물류창고 화재가 발생한지 1년이 지났다.
6일간의 황금연휴를 하루 앞둔 2020년 4월 29일 이천시 모가면 공사 현장에는 67명의 작업자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대부분 설비, 도장, 전기 등 각 분야의 하청업체에 속한 직원들이었다.
공기 단축을 위해 당초 예정보다 두 배 많은 인력이 현장에 한꺼번에 투입된 상황이었다.
그러던 오후 1시 32분 별안간 검은 연기와 불꽃이 지하 2층 지상 4층의 1만1천여㎡ 건물을 뒤덮기 시작했다.
용접 불티가 원인이었다.
천장 벽면 속 도포된 우레탄폼을 따라 불씨가 이리저리 이동한 탓에 작업자들은 불길이 치솟기 전까지 화재 사실을 알지 못했다.
순식간에 연기로 뒤덮인 건물 내부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이 현장 유해위험방지계획서에는 지하 2층에서 화재 등 위험 발생 시 기계실로 통하는 방화문을 거쳐 대피하게 돼 있지만, 현장에서는 아예 방화문을 만들지도 않았다.
게다가 방화문이 들어갈 공간을 비워두면 결로가 생길 수 있다는 이유로 이를 벽돌로 막기까지 했다.
이 때문에 지하 2층에 있던 작업자들은 쌓인 벽돌을 뚫어보려다 결국 숨졌다.
지상 1층부터 옥상까지 연결된 옥외 비상계단은 설계와 달리 외장이 패널로 마감돼 오히려 불길이 확산하는 통로로 전락했다.
이에 지상층 작업자들은 대피로를 빼앗겨 인명피해가 커졌고, 특히 지상 2층의 경우 투입돼 있던 작업자 18명이 모두 숨지기도 했다.
이날 화재로 목숨을 잃은 작업자는 38명, 후유장해가 남을 정도의 중상을 입은 작업자는 10명에 달했다.
최근 10년간 이보다 더 많은 사망자가 나온 화재 사고는 45명이 숨진 2018년 밀양 세종병원 화재뿐이었다.
지난해 말 이천 화재 사고에 대한 첫 판결이 내려졌다.
시공사 건우 현장소장에 징역 3년 6개월, 같은 회사 관계자에겐 2년 3개월, 감리 관계자에겐 1년 8개월 형이 선고됐다.
반면 발주처인 한익스프레스 측 팀장은 금고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아 실형을 면했다.
유가족들은 "재발 방지를 기대할 수 없는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반발했다.
이에 정치권은 재발 방지 대책으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법)'을 꺼내 들었다.
노동자의 사망사고 등이 발생했을 때 예방책임을 다하지 않은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기업을 처벌하는 것을 골자로 지난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이 법안에 따르면 노동자 1명이 숨지거나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는 중대 재해가 일어날 경우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가 산재 예방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 등 규정된 안전 조치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나면 1년 이상의 징역형이나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외에 법인이나 기관도 주의·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날 경우 최대 50억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그러나 노동계에서는 중대재해법이 여전히 현실과 괴리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을 예외로 두고 있어 산재에 취약한 소규모 기업들이 사각지대에 놓일뿐더러 건설공사 발주자를 처벌 대상에 포함한 조항이 빠지면서 발주처의 공기 단축 요구 등이 사고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현행 중대재해법으론 발주자가 공사 기간 단축을 강요할 경우 실무자들은 무리하게 동시 작업을 진행하는 등 안전 지침을 어길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이천 화재도 이 같은 동시 작업 중에 일어난 참사인 만큼 발주자에게 더 강한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5인 미만 사업장은 처벌에서 제외된 만큼 이들에 대해 별도의 교육과 안전관리가 지원돼야 할 것"이라며 "이 법으로 재계가 지나치게 위축되지 않도록 모범 기업에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등 보완책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류상일 동의대 소방방재행정학과 교수는 "발주자가 처벌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아쉽지만 규제 수위를 급하게 높일 경우 사회적 비용 등 여러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본다"며 "사회적 합의를 통해 규제가 점진적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