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U.H.M. 개인전 개막
평면성 벗은 한국화…뜯을수록 깊어지는 김춘옥의 한지 그림
둥근 연잎과 연꽃이 화면에 은은하게 펼쳐진다.

마치 흰 눈이 내린 듯한 연못에 꽃봉오리가 물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작품은 사실적이기보다는 함축적으로 자연을 담았다.

그런데 잔잔한 연못이 느껴지고 연잎과 연꽃은 만져질 듯 입체적이다.

붓으로 그리지 않고 여러 겹 바른 한지를 뜯어 화면을 구성하는 김춘옥(75) 화백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다.

안료를 쌓아 올리는 것과 반대로 종이를 뜯고 걷어내 동양적인 깊이감을 전한다.

용산구 후암동 갤러리 U.H.M.에서 개막한 개인전은 50여 년 한국화의 길을 걸어온 작가가 지난 20년 매진해온 한지 작업을 선보인다.

2000년대 초반 작품부터 올해 완성한 신작까지 40여 점이 소개된다.

전통적인 수묵채색화로 출발한 김 화백은 1980년대 초반 여러 미술상을 받으며 화단의 인정을 받았다.

한국화의 현대적 재창조와 세계화를 위한 실험 끝에 그는 2000년 혁신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한지를 5~8겹 붙이고 그 위에 먹을 칠한 뒤 뜯어내며 이미지를 만들었다.

수묵의 번짐으로 나타나는 미감을 살리면서도 한국화의 평면성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였다.

콜라주와 반대로 화면을 뜯어내는 데콜라주 방식으로, 미술평론가 윤진섭은 이를 '촉각적 회화'라고 칭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김 화백은 "우리 종이와 먹이 좋지만 서양화처럼 마티에르를 표현하기가 어려웠다"라며 "수묵화는 먹이 옆으로 번지는데 밑으로 번지는 그림을 떠올렸다"고 설명했다.

종이를 쌓은 뒤 표면에 먹을 바르면 아래로 스며들면서 색의 단층이 생긴다.

표면은 새까맣지만 한 겹씩 뜯어내면 색이 점점 옅어지고 마지막에는 흰 종이가 드러난다.

종이를 뜯고 찢어 형태를 만드는 작가의 행위는 어둠에서 시작해 빛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중간층에 색지를 쓰거나 채색으로 다른 색을 드러내기도 한다.

완성한 작품은 반추상에 가깝다.

대상을 세밀하게 묘사하지 않는 시적인 작업으로 작가는 자연과 인간, 세상 만물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그는 "우리는 어떤 사물을 단순히 그 자체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성에 의해 이해한다"라며 "그것이 서양과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난초를 그리면 하늘고 없고 땅도 없지만 그 안에 다 관계가 함축돼 있다.

연(蓮)도 그렇고 우리 인생사도 마찬가지"라며 "그러한 공간을 나타내 동양적 미감을 구현하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한국화 부흥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쳐온 작가는 "대학에서 동양화과가 계속 없어지고 해외에 제대로 한국화를 보여주지 못하는 현실이 아쉽다"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 지원도 필요하지만, 작가들부터 문제의식을 가지고 독창적인 언어로 우리의 미감을 보여줘야 한다"라며 "전통과 정신성은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한국전업미술가협회 이사장, 마을미술프로젝트 추진위원장, 한국화여성작가회 회장 등을 지냈고 2003년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현재 한국화진흥회 이사장, 한국화여성작가회 고문, 한국미술협회 상임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전시는 5월 10일까지.
평면성 벗은 한국화…뜯을수록 깊어지는 김춘옥의 한지 그림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