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 4명중 1명 "진료 제때 못 받아"…숙련 의료인력도 부족
"아파도 정작 말하기 어려워"…군 의료체계 과제 산적
2011년 육군훈련소에서 뇌수막염을 제때 치료받지 못해 사망한 고(故) 노우빈 훈련병 사건 이후 10년이 흘렀지만 군 의료체계는 여전히 개선돼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아프다'고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는 데다 장기복무 군의관 인력 부족, 민간병원보다 떨어지는 군 의료 수준 등 고질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장병들이 아플 때 병원에 갈 수 있는 복무 환경을 조성하고, 민간 의료서비스 수준을 현실적으로 따라잡기 어렵다면 선택과 집중으로 한정된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 병사들, 아파도 말 못해…의료인력 부족 문제 여전
22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발간한 '장병 건강권 보장을 위한 군 의료체계 실태조사 보고서'에는 군 의료서비스를 이용한 병사 637명 중 24.8%(158명)가 진료나 검사를 제때 받지 못한 경험이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응답자들은 훈련·근무로 의료기관에 갈 시간이 없거나 근무지를 비울 수 없고, 부대 분위기상 아프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보고서는 "업무 부담을 남에게 떠안기는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문화·심리적 압박으로 장병의 의료권 행사가 제약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군 의료서비스 수준이 민간에 크게 못 미친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숙련된 의료인력 부족은 대표적으로 꼽히는 고질적 문제다.

국방부가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전체 군의관 2천400여명 중 장기복무자는 약 6%에 불과했다.

그마저 장기 군의관 대다수가 관리·행정직이어서 임상 경험이 짧은 단기 군의관들이 진료와 치료를 담당하고 있다.

국방부도 장기복무 군의관 증원을 위해 처우 개선 등 유인책을 내놓고 있으나 예산 문제 등으로 급여나 처우가 여전히 민간에 뒤처져 인력 확보가 어렵다.

이 같은 상황에서 병사들의 민간 의료기관 이용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병사들의 민간 의료시설 이용 건수는 2016년 95만8천900여건에서 매년 늘어 2019년에는 138만7천여건으로 집계됐다.

보험연구원의 2019년 '병사 의료기관 이용 행태 현황 및 인식조사'를 보면 병사들은 민간병원 선호 이유로 '의료수준이 뛰어나서(19.3%)', '군 의료서비스 만족도가 낮아서(17.9%)', '의료시설이 좋아서(11.6%)' 등을 꼽았다.
"아파도 정작 말하기 어려워"…군 의료체계 과제 산적
◇ "군, 1차 의료관문에 집중…민간과 협력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군 복무 중 제때 진료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복무 여건을 개선하고, 군이 민간 의료기관과 역할을 분담해 의료역량을 '선택과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김인숙 민들레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진료에 따른 업무 공백을 해소할 인력 확보책이 필요하다"며 "지나치게 세분된 직무체계를 더 넓게 범주화해 업무 대체가 쉽게 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군이 초기 진료와 후송 등 1차 의료관문 역할에 충실하고, 그 이상의 단계에서는 민간과 협력체계를 강화하는 쪽이 현실적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숙련된 의료인력 확보가 어렵고, 군 의료서비스 이용자 상당수가 감기나 염좌 등 경증환자인 경우가 많은 점을 고려한 의견이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군이 완결된 의료역량을 갖추려고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중증질환 등 숙련된 의료역량이 필요한 영역은 민간과 협력체계를 강화하고, 군은 총상·폭발상 등 특화된 영역에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