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고구려인이 세운 국가…중화민족은 후대 개념" 반박
최근 한국과 중국간 역사·문화 분야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중국 측이 한국 고대사인 발해(698~926년)에 대해 자국 역사상 지방정권 정도로 서술하고 있는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과거 발해가 있었던 중국 지린(吉林)성의 지린성박물관은 '발해국은 말갈족이 주체가 돼 건립한 당나라 시대의 지방정권'이라고 규정하면서 '200여년의 민족융합을 거쳐 최종적으로 중화민족 대가정의 일원이 됐다'고 기술했다.

한국은 발해가 고구려 유민에 의해 고구려 땅에 건국됐다고 본다.

반면 중국은 말갈족이 세운 지방정권이나 당나라의 한 지방 주(州) 정도라고 주장하는데, 박물관은 이러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지린성박물관에는 '발해가 당나라 문화를 전면적으로 배우는 기초 위에서 비교적 완비된 정치제도를 만들었다'거나 '발해 도시는 구조·기능, 건축양식 등이 모두 중원 도시의 복제품'이라는 기술도 눈에 띈다.

임상선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발해가 멸망 후 중화민족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은 현재 중국 국민이 1천년 전부터 존재했다는 것"이라면서 "중화민족은 사실상 청나라가 망하고 중화민국이 건국되는 와중에 한족이 만든 개념"이라고 비판했다.

발해 유적이 다수 발견되는 지린성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 옌지(延吉)의 옌볜박물관 설명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옌볜박물관은 '발해는 속말말갈인이 주체가 돼 건립한 정권'이라면서 대조영을 '말갈족 수령'으로 표현한다.

또 '당나라가 762년 조서를 내려 발해를 나라로 인정하고 이듬해 대흠무를 발해국왕으로 책봉했다'는 내용도 있다.

한국 학계에서는 당나라가 자신의 입장에 따라 명목상 발해를 나라로 인정한 것일 뿐이며, 이를 계기로 발해가 비로소 나라가 된 것처럼 설명하는 것은 당시 상황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뿐만 아니라 발해유적지 육정(六頂·류딩)산 고분군 등이 있는 옌볜 조선족자치주 둔화(敦化)에는 발해의 이름을 딴 광장이 조성돼 있는데, 이곳에 설치된 발해 역대 왕들의 부조 조각의 의복은 중국식으로 표현돼 있다.

광장 벽에는 또 '발해는 당나라가 봉한 (지방 구역) 후한저우(忽汗州)'라면서 '(2대 왕) 무왕은 당나라의 덩저우(登州)를 공격했지만 곧 잘못을 뉘우쳤다', '762년 당나라 숙종은 (3대 문왕) 대흠무를 발해국왕으로 진급시켰다'는 등의 내용이 적혀있다.

한편 중국은 다른 고대사나 일제시기 독립운동사 등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해석하고 있다.

중국 만리장성이 동북 3성과 한반도까지 이어졌다는 주장을 통해 고대사의 범위를 확대하려는 시도가 대표적 사례이며, 일제시기 만주지역 독립운동은 자국 역사로 편입하고 공산당 투쟁사 위주로 정리하고 있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내세워 한국 고대사를 자국 역사로 편입하려 한 데 이어, 최근에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내세워 자국 국경 안에 있는 56개 민족의 역사를 모두 중국사로 통합하려 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이 "고고학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정신적 힘"이라고 강조하는 등, 중국은 이를 위해 역사와 고고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 만큼 최근 '2020년 중국 10대 고고학 발견'에 발해 건국 추정지인 마반(磨盤)촌 산성, 시짱(西藏·티베트) 자치구의 묘지 등이 포함된 것도 변경 역사 연구를 통한 중화민족주의 강화 시도라는 관측이 나온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