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기사 부담 호소…조건부 지상도로 허용 등 제안
전문가 "자치단체가 대화기구 구성해 갈등 조정해야"
'택배 갈등' 해결책이 손수레·저상차량?…"대안 찾아야"
서울 강동구의 5천세대 규모 아파트에서 벌어진 '택배 갈등' 사태가 이틀 만에 마무리되면서 배달이 재개됐지만, 지속 가능한 대안이 나오지 않은 미봉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아파트는 지난 1일부터 택배차량의 지상도로 출입을 전면 금지했고, 이에 반발한 택배기사들이 14일 '문 앞 배송' 중단을 선언했다가 이틀 만에 방침을 철회하고 손수레를 이용해 개별 배송을 다시 시작했다.

불편을 느낀 입주민들이 택배기사들에게 항의문자를 보내고, 관할 자치구와 택배회사에 민원을 넣는 등 반발했기 때문이다.

갈등이 봉합된 듯 보이지만, 택배차량의 지상도로 출입이 금지된 아파트에서 배달해 본 경험이 있는 택배기사들의 의견은 다르다.

택배기사 이모(36)씨는 재작년에 경기 하남시 위례신도시에서 겪었던 경험에 관해 "육체적으로 견딜 수 없던 시간"이라며 "손수레나 저상차량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택배 갈등' 해결책이 손수레·저상차량?…"대안 찾아야"
◇ "매일 새벽 2시 퇴근"…저상차량, 육체적 부담 커
이씨는 "우선 택배를 동별로 분류해 놓고 문 앞까지 옮기다 보니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렸고, 매일 새벽 2시에 퇴근하느라 잠을 못 잤다"고 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 일대를 담당하는 17년차 택배기사 원영부(51)씨는 "손수레로 배송하라는 건 대안이 아니라 죽으라는 갑질"이라고 했다.

원씨가 맡은 아파트 중 2개 단지는 2018년께부터 택배차량의 지상 통행을 금지했다.

그는 "손수레에 물품을 옮기는 데 5분 정도 걸리는데, 한 번에 아파트 1개동 분량만 실을 수 있어 10동이면 이 작업만 50분 넘게 걸린다"며 "시간이 2배 이상 소요되니 자정 가깝게까지 배송하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했다.

아파트 측은 저상차량을 이용하면 지하주차장으로 진입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택배기사들은 저상차량 배송의 시간·육체적 부담을 모르는 얘기라는 반응이다.

일반 차량은 짐칸 높이가 180㎝이지만 저상차량은 127㎝에 불과해 짐을 많이 싣지도 못하고 기사들이 몸을 굽힌 채 물건을 옮겨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씨는 "저상차량을 쓰면 손수레보다 몸이 더 힘들다"며 "물건을 받아 오려고 대리점까지 더 많이 왕복해야 하는 걸 고려하면 시간이 더 걸린다"고 했다.

원씨도 "하루에 끝낼 일을 저상차량으로는 사흘간 해야 하는데, 물량이 늘어나는 명절 때는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택배 갈등' 해결책이 손수레·저상차량?…"대안 찾아야"
◇ 조건부 지상통행 허용·제3자 대화기구 등 제안도
아파트 측에서 조건부로 지상도로 이용을 허용하거나 문 앞 배송에 드는 비용을 일부 부담하는 등 어려움을 분담하자는 게 택배기사들의 제안이다.

이씨는 "단지 안에서 차량이 저속으로 운행하게 하고, 위반 시 제재를 하면 될 것"이라며 "지금처럼 배송이 늦어지는 상황은 주민들도 싫어한다"고 말했다.

원씨는 "판교의 한 아파트 단지는 지상 통행을 제한하면서도 택배차량이 운행 가능한 구역을 따로 구분했다"며 "아이들을 보호하면서도 기사들을 배려한 합리적 결정"이라고 했다.

그는 "택배차량을 막은 주민들이 단지 앞에서 문 앞까지 배송되는 비용 일부를 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민과 택배기사 간 갈등을 제3자가 중재하고 조정할 수 있는 공론장의 필요성을 지적하는 의견도 나온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파트 주민의 공론장인 입주자대표회의처럼 지방자치단체가 나서 주민과 외부 이해집단 간 관계를 조정하는 대화 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지금은 노동자가 갈등의 최종 비용을 부담하게 됐는데 이런 점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최종적으로 이익을 얻는 당사자인 택배회사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도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부담을 강제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기보다 협의를 거쳐 향후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참고할 만한 모범 해결 사례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