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는 골드만삭스, JP모간 등 유수의 금융회사들이 경쟁하는 세계금융의 중심지로 유명하지만, 여성인재들에게는 ‘이중 유리천장’이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악명 높다. 이렇게 완고했던 월스트리트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달 씨티은행 최고경영자(CEO)로 제인 프레이저가 취임해 100년이 넘는 월스트리트의 글로벌 은행 역사 최초로 여성 CEO가 탄생한 것이다.

프레이저는 씨티그룹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450억달러의 공적자금을 받은 이후 각종 내부 개혁을 잘 해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2015년부터 라틴아메리카 책임자로서 재무실적을 개선시키며 탁월한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이렇게 화려한 이력을 가졌지만, 아내와 엄마, 여성 직장인이라는 배경 때문에 고위직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그는 한 연설에서 “젊은 시절 금융업계에는 여성이 너무 적었고, 모두 남자 같은 옷을 입고 무서워 보였으며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고 대표성이 커졌다고는 하지만 출산과 육아의 어려움으로 경력이 단절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몇 년 전 저출산 관련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육아 부담을 부모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기보다 시스템을 통해 지원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출산과 육아로 인한 불이익 없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갈 책임이 사회에 있다는 생각이다. 내가 근무하는 예금보험공사에서는 작년에 만 5세 이하 자녀를 양육하는 경우 하루에 2시간의 육아시간을 부여하는 제도를 새롭게 도입해 육아로 어려움을 겪는 젊은 직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매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를 대상으로 직장 내 여성 차별 수준을 지표화한 ‘유리천장지수’를 발표하는데, 한국은 9년 연속 꼴찌에 머물러 갈 길이 멀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 여성 관리자를 늘려야 한다는 방향성에는 대부분 공감하면서도, 승진 적체 속에서 오히려 아직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남자 직원이 역차별이라고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도 많다.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고 반목하기도 한다.

여성 관리자 육성과 성평등 사회는 일방적인 제도로만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조직 내 모든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고, 문화로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야만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들이 진정으로 인정받고 자기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풍토가 만들어질 것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우수 여성인력들이 성평등 조직문화 속에서 잘 엮이고 역량을 발휘해서 기업은 물론 국가의 보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