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 회복에 맞춰 국내 상장기업들이 올 1분기 설비투자를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세 배 이상 늘렸다. 사진은 최근 설비 증설을 완료하고 본격적으로 폴리에틸렌 생산에 들어간 한화토탈의 충남 대산공장.   연합뉴스
글로벌 경기 회복에 맞춰 국내 상장기업들이 올 1분기 설비투자를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세 배 이상 늘렸다. 사진은 최근 설비 증설을 완료하고 본격적으로 폴리에틸렌 생산에 들어간 한화토탈의 충남 대산공장. 연합뉴스
요즘 주요 산업단지엔 활기가 넘친다. 지난 2월 제조업 평균 가동률이 77.4%를 기록해 2014년 7월(77.7%) 후 가장 높았다.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등 제품이 날개 돋친 듯 팔리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늘어나는 주문을 맞추려고 설비를 확충하는 기업이 늘면서 1분기 설비투자액(7조9499억원)이 작년 같은 기간 대비 세 배 이상 증가했다.

설비투자가 왕성해진 것과 달리 민간소비 흐름은 지지부진하다. ‘고용 없는 회복’ 양상에 따라 가계 씀씀이가 부진한 결과다. 세계적으로 뒤처진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회복 국면을 맞은 경제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기업 수출·설비투자·가동률 ‘껑충’

SK하이닉스는 올해 1분기 조(兆)단위 투자계획을 공시했다. 이 회사는 지난 2월 초소형·저전력·고성능 반도체 칩을 효율적으로 제조하는 극자외선(EUV) 장비를 사들이기 위해 4조7549억원을 투자키로 했다.

대덕전자(투자액 700억원), 테스나(324억원)를 비롯한 중견기업도 줄줄이 반도체설비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카카오는 데이터센터 구축에 4249억원, 대한유화는 화학 공장 증설에 1405억원, HMM은 유조선·컨테이너 확보에 3569억원을 투자한다고 공시했다.

많은 기업은 증가하는 수출에 맞춰 설비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다. 올해 1분기 수출액은 1466억5300만달러로 작년 1분기보다 12.7% 늘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반도체와 자동차 제품 수출이 늘면서 올해 수출액이 전년 대비 18.1% 증가한 6053억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봤다. 전망이 현실화하면 2018년(6049억달러) 수준을 웃도는 역대 최대치다.

수출길이 넓어진 데다 창고에 쌓인 재고 물량이 빠르게 소진되는 만큼 갈수록 설비투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제조업의 출하 대비 재고 비율을 의미하는 재고율은 지난 2월 103으로 2018년 5월(101.4) 후 가장 낮았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글로벌매크로팀장은 “출하량 대비 재고물량이 부족한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며 “재고 감소와 공장 가동률 상승은 설비투자 지표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민간소비는 여전히 침체

경제 전문가들은 올해 설비투자 증가율이 반도체 경기가 호황기를 보이던 2017년(16.5%) 후 가장 높을 것으로 내다봤다. 설비투자 증가율은 2018년(-2.3%)과 2019년(-7.5%) 연속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2020년에는 기저효과에 힘입어 6.8%를 나타냈다. 올해는 작년 증가율을 넘어설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지난 2월 올해 설비투자와 수출 증가율을 각각 5.3%, 7.1%로 제시한 한국은행은 다음달 경제전망에서 두 지표를 나란히 끌어올릴 것으로 관측된다. 성장률 전망치도 종전 3%에서 3.3~3.4%로 상향 조정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골드만삭스 JP모간 HSBC를 비롯한 해외 투자은행(IB) 9곳이 전망한 올해 한국 성장률도 평균 3.8%로 2월 말 집계치(3.6%)보다 0.2%포인트 상향 조정됐다.

국내총생산(GDP)을 구성하는 3대축(소비·수출·투자) 가운데 수출·투자는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소비는 주춤한 양상이다. 한은은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을 2%로 내다봤다. 지난해 민간소비 증가율은 -4.9%로 저조했지만 올해도 기저효과를 크게 누리지 못한 채 저조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가 할퀸 민간소비의 상흔이 올 들어서도 회복되기 어려울 수 있다.

민간소비가 저조한 것은 고용 유발효과가 높은 서비스업이 침체를 겪으면서 일자리가 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년 동월 대비 취업자 수는 1월에 98만2000명 감소한 데 이어 2월에도 47만3000명 줄었다.

백신 보급 속도가 서비스업 회복과 민간소비 향방을 가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장민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백신 보급 속도가 성장률 향방을 판가름할 것”이라며 “보다 빠르게 보급되면 올 성장률이 3% 중반대를 넘어설 수 있다”고 예측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