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일자리 쇼크의 반전…이코노미스트 스페셜 리포트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은 1930년대 이래 노동시장에 가장 큰 충격을 줬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은 이미 극적인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한편, 기술 발전이 노동을 대체하고 비정규직 등 불완전 노동이 확산함에 따라 불평등이 심화될 거라는 비관적 전망과는 반대로 코로나19 사태 직전까지 선진국들의 고용 사정은 계속해서 좋아져 왔다. 결국, 코로나19가 극복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노동시장의 회복 추세와 겹쳐 보면 일의 미래는 밝다는 결론에 이른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최신호에 ‘일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스페셜 리포트가 실렸다. 아직 코로나19 쇼크에서 회복되지 못하는 한국의 노동시장 상황과도 대조적인 선진국의 모습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노동의 미래를 놓고 부정적인 전망이 우세한 분위기와도 정반대의 내용이다. CHO 등 기업인뿐만 아니라 정책 담당자에게 던져 주는 인사이트가 작지 않다. 이코노미스트의 스페셜 리포트를 요약해 봤다.

코로나19 쇼크에서 벗어나는 OECD 회원국들의 모습이 먼저 눈에 띈다. 미국의 경우 2020년 4월 한 달 만에 실업률이 4%에서 15%까지 치솟았다. 다른 OECD 회원국들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기간 동안 실업률이 5%에서 9%로 올랐다. 실업률이 12.6%까지 갈 거라는 전망도 나왔지만 지난해 말 6.9% 선에 그쳤다.

오히려 올해 들어 일자리는 많이 늘어나는 추세다. 유가처럼 실업률도 증가 속도에 비해 개선이 더딘 점을 감안하면 일자리 붐이라고 할 만하다. 사라지는 일자리를 감안한 신규 일자리를 의미하는 ‘고용 재배치’ 수준에서 미국은 팬데믹 이전보다 두 배나 높은 수치를 보인다고 바레로 ITAM 경영대학원 교수는 밝혔다. 일자리 붐 배경에는 신규 창업과 기술 발전이 있다. 코로나19 와중에도 2020년 미국에서 새로 생겨난 스타트업은 150만개로 2019년에 비해 16%나 증가한 것이다. 아울러 인디드(Indeed), 몬스터(Monster) 같은 일자리 알선 웹사이트가 널리 활용되고 플랫폼 기업이 늘어나는 등 기술 발전도 일자리 창출을 뒷받침하고 있다.
코로나19 쇼크 벗어나는 선진국 노동시장
일자리를 둘러싸고 부정적 전망이 우세한 건 자본주의가 생겨난 이래 한결같았다. 가이 스탠딩 같은 경제학자가 얘기하는 ‘프레카리아트(불안정한 계급)’ 증가, 데이비드 블랜치플라워의 ‘좋은 일자리는 모두 어디로 가버렸나’라는 질문도 같은 의미다. 하지만 2008년에서 2009년 사이 금융 위기를 제외하면 2019년 말까지 매년 3%가량 소득이 증가했다. 당연히 국민소득 가운데 노동 분배율도 계속 높아져 왔다.

한편 부유한 국가들 사이에서 소득 불평등이 심화된 것도 사실이지만 그나마 2010년 이후에는 '불평등'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줄어들기까지 했다. 저임금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고 영국의 경우 1977년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프레카리아트가 증가한다는 객관적인 입증 자료가 실제로는 별로 없다.

전체적으로 일자리 상황이 계속 호전되는 가운데 코로나19의 충격도 극복해 가는 선진국에서도 충격이 유난히 컸던 부문도 있다. 이른바 필수 노동자들이다. 음식, 난방, 수송 등에 종사하는 이들 필수 노동자들은 재택근무가 가능했던 사무직 노동자들에 비해 코로나19의 위험 상황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을 이코노미스트는 스페셜 리포트에 포함했다.
원격·재택근무, 생산성 높여... 기술 진보가 일자리에 주는 영향은 미미해
'데스크톱에서 노트북으로...' 원격근무나 재택근무의 확산을 표현한 제목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코로나19로 일자리가 하이브리드형으로 진화했다고 설명한다. 사무실이란 공간에 매이지 않고 집이나 다른 공간까지 일하는 장소가 확대됐다. 커뮤니케이션이 발달하고 관리자들의 인식이 바뀌는 등 조직 문화도 영향을 받았지만 법, 제도나 정치적인 영역도 일하는 방식 변화에 따라 바뀌고 있다.

코로나19는 자동화를 촉진하기도 한다. 캐나다의 카페업체 ‘알씨커피’는 바리스타를 로봇으로 대체했다. 종업원과 고객이 직접 대면하는 데서 오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된 사례다. 이같이 자동화, 로봇화가 진행되면 일자리가 위협받을 거라는 예상은 생각보다 잘 들어맞지 않는다. 직접적인 수치로 확인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2013년 오스본과 프레이는 미국 일자리의 47%가 자동화로 사라질 거라고 전망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기술 발전은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옥스퍼드 대학의 다니엘 서스킨드는 ‘노동 총량의 오류’를 언급한다. 한 사회에 필요한 노동의 총량은 정해져 있어서 자동화되는 만큼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건 오류라는 것이다. 기술 발전은 비용을 낮추고 생산성을 높이는 대신 새로운 수요와 일자리를 창출한다. 바리스타 일이 자동화돼 커피 가격이 낮아지면 고객들은 이제 마사지에 돈을 쓸 여유가 새로 생기는 것과 같다.
정부 일자리 정책 목표... ‘유연안정성(flexicurity)’이 정답
일자리의 질이 더 나빠지거나 자본에 비해 노동의 분배 몫은 줄어들지 않는 데는 정부나 중앙은행의 역할도 크다. 과거 중앙은행의 주된 임무는 인플레이션 억제였지만 지금은 실업률 관리 목표도 포함되는 추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일본은행, 영국은행 등... 중앙은행 수장들은 예외 없이 고용을 강조하고 나선다.

재정 정책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가 닥치자 부유한 국가들은 모두 정부가 대규모 재정 적자를 감수하면서 부양책을 쏟아낸다. 복지제도도 마찬가지다. 적극적인 역할이 강조된다.

한때 후한 사회보장 혜택은 일자리 창출을 오히려 방해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미국에서 실업급여를 낮추는 공화당의 개혁 결과 일자리는 오히려 크게 늘었다는 식의 주장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강조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이런 논의의 방향도 바꿨다.

결국 유연안정성(flexicurity)에 답이 있다. 덴마크는 실업 시 종전 소득의 80%를 받는다. 취학 자녀가 있는 경우 100%에 이르기도 한다. OECD 국가의 평균이 60%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안정성이 매우 높은 수준이지만 이 때문에 역설적으로 새로운 일자리로의 이동이 자유롭다는 측면도 있다. 덴마크에서는 실직 후 2주 이내에 이력서를 제출하는 등 활발한 구직활동을 하지 않거나 직업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는다면 복지혜택을 제대로 누릴 수 없게 된다.

서구 선진국과 한국은 코로나19 극복에 있어 상당한 격차가 있어 보인다. 노동시장 상황이나 ‘일자리의 미래’에 대한 전망, 정부의 정책 방향도 마찬가지다. ‘노동 존중’, ‘안정성’을 강조하는 데 머물지 않는 여러 나라들의 모습이 스페셜 리포트에 잘 나타나 있어 눈여겨볼 만하다.

최종석 전문위원 js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