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한 체하는 영국사람에게 받아 기뻐"
수상소감 화제 모으자 "솔직한 심정"
미국 이민자들의 삶을 그린 영화 '미나리'에서 할머니 순자 역을 연기한 윤여정은 11일(현지시각) 영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들어 올렸다. 이에 따라 오는 25일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 수상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영국 아카데미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여우조연상에 윤여정 이름이 호명됐고 감격한 모습의 74세의 한국인 여배우의 얼굴이 포커싱됐다.
윤여정은 "나는 한국 여배우 윤여정"이라고 밝히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후보에 올라 영광이다. 아, 이제 수상자가 됐다"며 영어로 수상 소감을 전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 필립 공에 대한 애도를 표하며 "모든 상이 의미가 있지만 고상한 체하는(snobbish) 영국사람에게 받아서 특별히 기쁘다"며 "제게 투표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고 재치 있게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MC는 특히 고개를 숙이며 웃음을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윤여정의 '고상한 체하는 영국인'이란 위트있는 수상소감은 현지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영국영화TV예술아카데미(BAFTA)가 올린 윤여정 수상 소감은 2747명이 리트윗했고 8173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시상식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화제의 수상 소감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고 윤여정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말이었다고 밝혔다.
윤여정은 "영국을 여러 번 방문했고 10년 전 배우로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펠로우십을 했다. 어쩐지 속물적인 느낌이 들긴 했지만 나쁜 것은 아니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영국인들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자존심이 높았다. 아시아계 여성으로서 이 사람들이 매우 속물적이라고 느꼈다. 제 솔직한 심정"이라고 했다.
미국 오스카 수상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윤여정은 크게 웃으며 "아는 것이 없다"며 "국제적이 아니라 국내적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니 묻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로이터통신, 인디펜던트지 등이 윤여정의 수상소감에 대해 유쾌한 반응을 이끌었다고 보도했다.
1947년생인 윤여정은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그는 1971년 MBC '장희빈'에서 악녀 장희빈 역을 맡아 대박을 냈다. 그해 김기영 감독의 영화 '하녀'로 스크린 데뷔, 본격적인 스타덤에 올랐다. 윤여정은 김 감독의 '충녀'에도 출연하며 '김기영의 페르소나'로 불리기도 했다.
배우로서 전성기였던 1974년 가수 조영남과 결혼해 배우 생활을 쉬고 미국에서 생활했다. 그가 외신들과 영어로 인터뷰를 할 수 있었던 이유다. 결혼 13년 만에 조영남과 이혼한 뒤 슬하의 두 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연예계에 복귀했다.
90년대 드라마 '사랑과 야망',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2000년대 '굳세어라 금순아', '넝쿨째 굴러온 당신', '디어 마이 프렌즈' 등 작품에서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열연했다. 또 예능 '꽃보다 누나', '윤식당', '윤스테이' 등에 출연해 쿨한 입담, 탁월한 패션센스를 뽐내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현역 배우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현지시간 오는 25일, 한국시간 26일 오전 열린다. 여우조연상 외에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음악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라있다. 윤여정은 이달 들어 SAG와 영국아카데미에서 잇달아 수상하며 한국 영화 102년 역사상 최초, 한국 배우 최초의 오스카 연기상 수상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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