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해도 쓰러지지 않는 소나무…그분들을 찍기 위해 난, 산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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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스토리 - 한국 최초 여성 클라이밍 사진 작가 '강레아'
19살 첫 등산, 가야산에 반해
내려오자마자 카메라 샀죠
19살 첫 등산, 가야산에 반해
내려오자마자 카메라 샀죠
2006년 어느 겨울날 새벽, 설악산 토왕성 폭포 빙벽을 오르며 다음날 새벽까지 사진을 찍었다. 정상에 오르니 한 발자국도 더 움직이기 어려웠다. “이곳에 뼈를 묻게 될 것 같다”며 울었다. 동료의 도움으로 겨우 하산한 뒤 쓰러져 사흘을 잤다. 그리고 다시 산으로 달려갔다. 한국 최초의 여성 클라이밍 사진작가 강레아 씨(53·사진)가 들려준 얘기다.
강 작가는 서울 인사동 갤러리 밈에서 다음달 2일까지 ‘소나무-바위에 깃들다’ 전시를 연다. 북한산 바로 옆 쌍문동 자택에서 지난 5일 그를 만났다. 강 작가는 이곳에서 계절에 따라 변하는 산의 모습을 감상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쓴다. 등반 사진가로서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상황이 허락하는 날은 산행 및 암벽등반 훈련을 한다. 이따금 촬영을 다녀오고 사진이 쌓이면 전시를 연다. 그렇게 이번 전시회를 포함해 일곱 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산과 사진을 탐구하는 구도자의 삶이다. “처음 등산을 시작한 건 열아홉 살 때였어요. 가야산에서 일출을 봤는데 하늘 빛깔이 너무 예뻐 사진에 담고 싶었습니다. 내려오자마자 카메라를 사서 산에 오를 때마다 들고 다녔지요. 대학 졸업과 취업, 사업 등 인생의 변곡점을 거치는 동안에도 산에서 사진을 찍고 싶다는 열망은 계속 강해졌어요. 결국 사진을 제대로 배우러 서른 살에 사진과에 들어가 2000년 졸업했습니다. 이후 2004년부터 산 관련 잡지 몇 군데에서 프리랜서로 일할 기회를 잡으면서 본격적으로 등반 사진가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구도의 길에는 고통이 따른다. 등반 중인 사람의 얼굴을 찍으려면 암벽에 매달린 채 상체를 밑으로 향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한 손만 써야 할 때가 많다. 무거운 사진기를 한 팔로 계속 지탱하다 보니 팔꿈치 바깥쪽 인대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3년을 버티다 결국 숟가락조차 들 수 없을 지경이 돼서야 수술을 했다.
“재활하는 데 1년 정도 걸렸어요. 하지만 몸의 아픔보다는 산에 올라가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고통이 더 컸습니다. 우울증까지 앓았죠.”
강 작가의 부상은 사진에 대한 열정과 몰입이 그만큼 강하다는 방증이다. 무게가 10㎏을 넘나드는 가방을 지고 산을 다니면서도 힘들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는 그다. “온 정신이 카메라의 뷰파인더 너머로 가도록 몰입하면 어떤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성격은 그대로 작품 세계에 반영됐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는 ‘의지의 발현’이다. 예컨대 암벽의 가장 어려운 코스를 공략하며 생존 의지를 불태우는 등반가의 눈동자다.
이번 전시 주제는 암벽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다. 강 작가는 소나무를 말할 때 존칭을 썼다. “그분들은 연약하면서도 고난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존재입니다. 가늘고 연한 나무 뿌리가 바위를 파고들어갈 수 있는 건 살아남으려는 의지가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죠. 인고의 세월을 이겨낸 소나무의 모습에서는 고귀한 아우라, 즉 모방할 수 없는 특유의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강 작가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나무의 모습은 첫 등반에서 마주친 ‘인수봉 오아시스 소나무’다. 오아시스는 등반 도중에 사람이 쉴 수 있는 장소다. 이곳에서 수령 100년이 넘는 노송이 흙도 거의 없는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많은 초보 클라이머가 그 뿌리에 체중을 지탱했지만 소나무는 이를 묵묵히 감내했다.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성인의 모습이 저절로 연상됐다.
강 작가는 이런 아우라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사진을 흑백으로만 찍는다. 화려한 색채는 감각을 어지럽힌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국의 산은 흑백으로 표현해야 본연의 매력이 살아난다는 이유도 있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좋은 예다. “인수봉 오아시스의 그분은 2019년 태풍 링링에 쓰러졌어요. 하지만 그분의 아우라가 준 감동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겁니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은 인간의 상황도 암벽 위 소나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삶의 의지를 굳게 다지고 전보다 강한 존재로 거듭나야 합니다. 대신 이 고비를 넘기면 전과 다른 경지에 올라설 수 있겠죠. 코로나19로 고통받는 분들이 고통을 이겨낸 소나무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용기를 얻었으면 합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강 작가는 서울 인사동 갤러리 밈에서 다음달 2일까지 ‘소나무-바위에 깃들다’ 전시를 연다. 북한산 바로 옆 쌍문동 자택에서 지난 5일 그를 만났다. 강 작가는 이곳에서 계절에 따라 변하는 산의 모습을 감상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쓴다. 등반 사진가로서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상황이 허락하는 날은 산행 및 암벽등반 훈련을 한다. 이따금 촬영을 다녀오고 사진이 쌓이면 전시를 연다. 그렇게 이번 전시회를 포함해 일곱 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산과 사진을 탐구하는 구도자의 삶이다. “처음 등산을 시작한 건 열아홉 살 때였어요. 가야산에서 일출을 봤는데 하늘 빛깔이 너무 예뻐 사진에 담고 싶었습니다. 내려오자마자 카메라를 사서 산에 오를 때마다 들고 다녔지요. 대학 졸업과 취업, 사업 등 인생의 변곡점을 거치는 동안에도 산에서 사진을 찍고 싶다는 열망은 계속 강해졌어요. 결국 사진을 제대로 배우러 서른 살에 사진과에 들어가 2000년 졸업했습니다. 이후 2004년부터 산 관련 잡지 몇 군데에서 프리랜서로 일할 기회를 잡으면서 본격적으로 등반 사진가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구도의 길에는 고통이 따른다. 등반 중인 사람의 얼굴을 찍으려면 암벽에 매달린 채 상체를 밑으로 향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한 손만 써야 할 때가 많다. 무거운 사진기를 한 팔로 계속 지탱하다 보니 팔꿈치 바깥쪽 인대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3년을 버티다 결국 숟가락조차 들 수 없을 지경이 돼서야 수술을 했다.
“재활하는 데 1년 정도 걸렸어요. 하지만 몸의 아픔보다는 산에 올라가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고통이 더 컸습니다. 우울증까지 앓았죠.”
강 작가의 부상은 사진에 대한 열정과 몰입이 그만큼 강하다는 방증이다. 무게가 10㎏을 넘나드는 가방을 지고 산을 다니면서도 힘들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는 그다. “온 정신이 카메라의 뷰파인더 너머로 가도록 몰입하면 어떤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성격은 그대로 작품 세계에 반영됐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는 ‘의지의 발현’이다. 예컨대 암벽의 가장 어려운 코스를 공략하며 생존 의지를 불태우는 등반가의 눈동자다.
이번 전시 주제는 암벽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다. 강 작가는 소나무를 말할 때 존칭을 썼다. “그분들은 연약하면서도 고난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존재입니다. 가늘고 연한 나무 뿌리가 바위를 파고들어갈 수 있는 건 살아남으려는 의지가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죠. 인고의 세월을 이겨낸 소나무의 모습에서는 고귀한 아우라, 즉 모방할 수 없는 특유의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강 작가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나무의 모습은 첫 등반에서 마주친 ‘인수봉 오아시스 소나무’다. 오아시스는 등반 도중에 사람이 쉴 수 있는 장소다. 이곳에서 수령 100년이 넘는 노송이 흙도 거의 없는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많은 초보 클라이머가 그 뿌리에 체중을 지탱했지만 소나무는 이를 묵묵히 감내했다.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성인의 모습이 저절로 연상됐다.
강 작가는 이런 아우라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사진을 흑백으로만 찍는다. 화려한 색채는 감각을 어지럽힌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국의 산은 흑백으로 표현해야 본연의 매력이 살아난다는 이유도 있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좋은 예다. “인수봉 오아시스의 그분은 2019년 태풍 링링에 쓰러졌어요. 하지만 그분의 아우라가 준 감동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겁니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은 인간의 상황도 암벽 위 소나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삶의 의지를 굳게 다지고 전보다 강한 존재로 거듭나야 합니다. 대신 이 고비를 넘기면 전과 다른 경지에 올라설 수 있겠죠. 코로나19로 고통받는 분들이 고통을 이겨낸 소나무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용기를 얻었으면 합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