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와 남미의 사계, 색다른 감성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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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
14일 롯데콘서트홀 음악회
14일 롯데콘서트홀 음악회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34·사진)가 지중해와 남미의 사계절을 한 공간에서 선보인다. 오는 14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실내악 합주공연 ‘크레디아 클래식 클럽’에서 안토니오 비발디의 ‘사계’와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를 연달아 들려준다. 신지아는 6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계절에 담긴 진미를 두 가지 색다른 감성으로 느낄 수 있는 무대”라고 소개했다.
이날 공연에서 신지아는 두 가지 역할을 맡는다. 디토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이끄는 동시에 독주도 한다. 지휘자가 없는 체임버오케스트라로 무대를 꾸려서다. 신지아는 “리더로서 악단을 조율하는 한편 주선율을 연주하는 부분도 소화해야 한다. 어렵지만 단원들 개성을 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신지아는 대중에게 친숙한 연주자다. 영화음악, 크로스오버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바이올린을 연주해왔다. 코로나19로 공연계가 직격탄을 맞았던 지난해에도 영화음악 작곡가 엔니오 모리코네 추모 공연에 나섰다. 일본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가 내한했을 때에는 듀엣을 선보였다.
“코로나19가 터진 뒤 클래식의 미래를 고민했습니다. CD 대신 음원과 영상이 각광받는 시대잖아요. 다른 장르의 음악회에 나선 건 대중과 어떻게 소통할지 고민한 결과예요.”
그렇다고 대중성만 좇진 않았다. 평단에선 실력이 탁월하다고 호평한다. 신지아는 2004년 파가니니 국제콩쿠르에서 3위, 이듬해 티보 바가 국제콩쿠르와 시벨리우스 국제콩쿠르에서 3위를 차지했다. 꾸준히 국제콩쿠르에서 좋은 성과를 내던 그는 2008년 롱티보 국제콩쿠르에서 1위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지휘자 정명훈이 이끄는 원코리아오케스트라의 악장을 맡았다. 2018년에 이어 두 번째다. 원코리아오케스트라는 한국인 연주자로 구성된 프로젝트성 악단이다. 공연이 있을 때마다 단원을 새로 꾸린다. 인기나 평판은 제외하고 연주 실력만이 심사 기준이다.
신지아는 ‘흙수저’ 출신이다. 어머니가 홀로 신지아와 언니(신아라 서울시립교향악단 부악장)를 바이올리니스트로 키웠다. 그는 “어머니가 새벽까지 일용직으로 일하시면서 레슨비를 냈다”며 “죄책감에 연습을 멈출 수가 없었다”고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집안 형편을 들은 김남윤 한예종 교수가 든든한 후원자가 돼줬다. 그는 “김남윤 선생님이 해외에 데려가고 장학생으로도 추천해 주는 등 큰 도움을 주셨다”고 말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이날 공연에서 신지아는 두 가지 역할을 맡는다. 디토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이끄는 동시에 독주도 한다. 지휘자가 없는 체임버오케스트라로 무대를 꾸려서다. 신지아는 “리더로서 악단을 조율하는 한편 주선율을 연주하는 부분도 소화해야 한다. 어렵지만 단원들 개성을 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신지아는 대중에게 친숙한 연주자다. 영화음악, 크로스오버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바이올린을 연주해왔다. 코로나19로 공연계가 직격탄을 맞았던 지난해에도 영화음악 작곡가 엔니오 모리코네 추모 공연에 나섰다. 일본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가 내한했을 때에는 듀엣을 선보였다.
“코로나19가 터진 뒤 클래식의 미래를 고민했습니다. CD 대신 음원과 영상이 각광받는 시대잖아요. 다른 장르의 음악회에 나선 건 대중과 어떻게 소통할지 고민한 결과예요.”
그렇다고 대중성만 좇진 않았다. 평단에선 실력이 탁월하다고 호평한다. 신지아는 2004년 파가니니 국제콩쿠르에서 3위, 이듬해 티보 바가 국제콩쿠르와 시벨리우스 국제콩쿠르에서 3위를 차지했다. 꾸준히 국제콩쿠르에서 좋은 성과를 내던 그는 2008년 롱티보 국제콩쿠르에서 1위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지휘자 정명훈이 이끄는 원코리아오케스트라의 악장을 맡았다. 2018년에 이어 두 번째다. 원코리아오케스트라는 한국인 연주자로 구성된 프로젝트성 악단이다. 공연이 있을 때마다 단원을 새로 꾸린다. 인기나 평판은 제외하고 연주 실력만이 심사 기준이다.
신지아는 ‘흙수저’ 출신이다. 어머니가 홀로 신지아와 언니(신아라 서울시립교향악단 부악장)를 바이올리니스트로 키웠다. 그는 “어머니가 새벽까지 일용직으로 일하시면서 레슨비를 냈다”며 “죄책감에 연습을 멈출 수가 없었다”고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집안 형편을 들은 김남윤 한예종 교수가 든든한 후원자가 돼줬다. 그는 “김남윤 선생님이 해외에 데려가고 장학생으로도 추천해 주는 등 큰 도움을 주셨다”고 말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