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화가들에게 피하고 싶은 소재 중 하나다. 너무나 오래 많이 다뤄져서다. 서울 관훈동 통인화랑의 ‘화론(花論)’은 이런 클리셰에 반기를 든 전시다. 김정선, 김제민, 신수진, 이광호, 이만나, 이정은, 이창남, 한수정, 허보리 등 중견작가 9명이 뻔한 소재인 꽃을 자신만의 색깔로 풀어냈다.

시작은 이창남이었다. 코로나19로 모든 일상이 멈췄던 지난해, 김정선 작가에게 그가 제안했다. “너무 우울하지 않니? 우리 꽃 그림 그리자.” 서로 작가를 추천하며 1964년생 이창남부터 1981년생 허보리까지 모였다.

김정선은 잡초 속에서 생명력을 뿜어내는 노란 민들레를 구상에서 추상으로 변화시키는 작품 ‘지금 여기’(사진)를 내놨다. 이창남은 꽃에 시간을 더했다. 약 3주간 진행된 작업을 통해 화병 속 꽃이 피어나고 시들어가는 과정을 담았다.

신수진은 작은 꽃잎이 모여 하나의 꽃송이를 만드는 겹꽃을 내놨다. 세필붓에 유화물감을 묻혀 꽃잎 하나하나에 실린 생명력을 그렸다. 허보리는 빠르고 거친 붓놀림으로 능내역, 고기리의 흐드러진 꽃밭을 리드미컬하게 담았다. 전시는 4월 11일까지.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