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위원회에 소속된 근로자위원이 사건 조사과정에서 법 절차를 위반했고, 그 결과 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판정이 위법하다는 판결이 1심에 이어 2심인 서울고등법원에서도 나왔다. 부당해고나 부당노동행위를 다투는 준사법기관인 노동위원회가 법 절차를 소홀히 했다는 판결이어서 파장이 작지 않다.
근로자위원의 법 위반 때문에... 고법서도 패소한 중노위
사건은 은행에서 대출 업무를 담당하던 근로자 P씨가 징계 해고된 데서 출발한다. 당시 은행은 P씨가 사기 논란이 있는 다단계 회사에 가입한 후 고객들에게 대출 상담을 하면서 다단계 회사에 투자하도록 권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은행은 2017년 11월 상벌규정 등 취업규칙 위반으로 P씨를 징계 해고했고, P씨는 곧바로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제기했다.

서울지노위는 2018년 4월 징계 사유는 인정되지만, ‘해고’라는 징계 양정이 과중하다는 이유로 부당해고로 인정했다. 그 후 은행은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지만 역시 징계 양정 과다를 이유로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은행은 중노위 조사과정에서 근로자위원이 노동위원회법에서 정한 절차를 위반해 부당하게 사건을 조사했다며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부당노동행위를 다루기 위해 구성하는 심판위원회는 공익위원 3인, 근로자위원 1인, 사용자위원 1인으로 이뤄진다.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이 참여해 의견을 제시하는 건 심판 과정에서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노동위원회법에서 정해 놓은 조치다.

이번 사건에서 문제 된 건 근로자위원이다. 근로자위원 K모씨는 은행 측이 제출한 징계 관련 서류에 등장하는 피해 고객에게 직접 전화까지 걸어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그 내용을 심판위원회에 제출했다. K씨는 그에 더해 은행 측에 해고된 배모씨와 합의하라고 권고까지 했다.

이를 두고 은행 측은 노동위원회법 규정상 노동위원회나 심판위원회 위원장이 지명한 위원 또는 조사관이 조사권을 갖는 것이지 근로자위원이나 사용자위원에게는 그런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은행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노동위원회 조사권은 ‘노동위원회’에 인정되는 권한이기 때문에 개별 근로자위원이나 사용자위원에게는 그런 권한이 없다고 봤다. 따라서 “근로자위원이나 사용자위원이 임의로 당사자 주장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조사행위를 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것이 서울행정법원의 판결 요지다.

중앙노동위원회는 1심인 서울행정법원 판결에 불복해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했고, 서울고법은 지난 5일 1심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사건 기록상으로는 확인되지 않는 피해 고객의 전화번호를 근로자위원이 사적으로 입수해 연락을 취한 점도 지적하며 서울고법은 근로자위원 K씨의 조사행위가 법 절차를 위반했다고 재확인했다.

준사법기관인 노동위원회가 소속 근로자위원의 법 절차 위반으로 법원에서 패소까지 한 것을 두고 논란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위원회 사건 처리단계에서 실무상 시사점도 작지 않다.

조사관 이외의 근로자위원이나 사용자위원이 사건에 관여하는 정도에 따라서는 절차상 위법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어서다.
최종석 전문위원 js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