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화의 무역인문학] 나의 라스베가스 매직쇼 참가기


박람회 또는 전시회의 기원은 시장이다. 따라서 박람회의 본질도 시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물건을 사고자 하는 사람과 팔고자 하는 사람들이 장터에 모여서 서로의 이해를 나누는 장소인 것이다. 박람회와 전시회는 실제 업무에는 구분없이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런 현대의 박람회는 일반적인 의미의 시장과 비교하면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현물 시장이 아닌 견본시장의 성격이 강조된다. 그러기 때문에 ‘견본시’라는 용어가 많이 쓰인 적도 있다. 둘 째로 소비자대상의시장이 아니다. 전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계약이란 직접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소비재는 유통업자가, 자본재는 기업의 구매 담당자가 소비자를 대표하기 때문에 소비자와 생산자를 직접 연결해주던 시장의 의미는 이미 사라졌다. 세 째로 거래 기간이 길어졌다. 박람회에서 이루어지는 계약은 단위가 크기 때문에 현금을 주고 물건을 인수하는 일이란 거의 없다. 대신에 박람회가 끝난 후 일정 기간이 지난 후 계약 조건에 의하여 정해진 물품을 송부한다. 네 째로 판매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박람회에 참가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역시 판매이나 반드시 절대적인 이유는 아니다. 기업의 이미지, 경쟁사아의 관계 고려, 현지 에이전트의 사기 양양 등 판매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이 장기적인 기업의 마케팅 전략상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면서 참가하는 기업이 많다. 이런 속성을 가진 박람회를 정의해보면 다음과 같다.

박람회란 유형 또는 무형의 상품을 매체로 하여 제한된 장소에서 일정 기간동안 소비자를 대표하는 관람객과 생산자를 대표하는 전시자 간의 거래와 상호 이해를 목적으로 진행되는 일체의 마케팅 활동이다.

자, 내가 라스베가스에 매년 두 차례 열리는 패션박람회인 매직쇼(Magic Show)에 참가했을 때를 설명해보자. 옆의 그 그림은 실제로 내가 참가했었던 부스의 모양이다.  우선 그 쇼에 참가하기 위하여 기본적으로 1,000켤레 이상의 양말을 가지고 간다. 그 때는 미국의 바이어들이 좋아할 만한 색상과 디자인으로 추가적인 샘플도 만들고, 보다 더 멋지게 보일 수 있는 조명장치나 사진등도 가져간다. 전시장에 설치된 나의 가로세로 3m, 도합 9평방미터의 공간은 서울에 있는 나의 사무실보다도 더 바이어와 상담을 하기위하여 잘 준비되어있다. 그리고 그런 공간에 생전 처음보는 바이어가 들어온다. 그럼 그는 누굴까? 일단 회사에서 라스베가스로 매직쇼를 보기 위하여 출장을 보낼 정도면 그 분야에서 상당한 전문가이고, 그를 위한 비용을 감당하여야 할 정도로 의사결정력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회사는 물론 그 바이어도 매직쇼 출장을 통해서 뭔가를 얻어가기를 바랄 것이다. 그런 사람이 나의 부스에 들어왔다는 것은 나의 제품이 그에게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증거이다. 내가 그를 억지로 불러들인 것도 아니다. 만일 내가 그를 만나기 위하여 사무실로 갔다면 무슨 온전히 단둘이 오랜 시간 내 양말만을 위하여 상담할 수있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끊임없이 걸려오는 전화와 다른 직원들과의 대화 때문에 상담은 지속적이기도 어려울뿐더러 시간적으로도 오래하지도 못할 게 뻔하다. 하지만 박람회장의 내 부스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와 나는 세상으로부터 분리된다. 넓지 않은 공간에서 온전히 나의 제품만을 가지고, 그 것도 나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상담이란 내가 어느 때보다도 더 효율적으로 설명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는 곳이다. 나는 상황에 대한 완전한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데, 바이어는 다른 업무로 인한 압박감도, 걸려오는 전화도 없는 완전 무방비상태가 된다. 즉 그는 나의 설명을 자세히 들을 준비가 되어있고 상당한 호감도를 부스를 들어온 순간 나에게 표현하는 셈이다.

카다로그나 홈페이지에 아무리 좋은 문구나 멋있는 사진으로 설명을 해도 실물을 만져보느니만 못하다. 그러니까 ‘백문이 불여일견(백번을 들어도 한번 보는 것만 못하다)’라는 속담이 박람회장 만큼 실감나는 곳은 없다. 해외 바이어를 상대로 파는 사람이 홈 그라운드의 잇점을 살릴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은 데, 적어도 전시회 기간동안은 그게 가능하다. 게다가 바이어의 질문도 즉각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그의 주된 관심사가 무엇인 지 파악이 된다. 이메일이나 팩스로 하는 질문과는 달리 표정과 몸짓, 대화의 억양등 비언어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하여 그의 관심과 호감의 정도를 더 확실히 알 수있다. 그리고 나는 그의 호감을 더 강화시킬 만한 샘플과 전시자료를 보여줄 수있고, 바로 근처에 있는 경쟁제품과의 비교를 통하여 내 제품의 특성내지는 우수성을 바로 확인시켜줄 수있다. 이러한 현장비교 특징은 산업재일 경우는 더욱 빛을 발한다. 왜냐하면 산업재는 소비재와는 달리 샘플을 요구할 수도, 출장자가 가져갈 수도 없지만, 박람회장에서는 집채만한 기계도 가져가서 전시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의 경우도 매직쇼에서 만난 바이어와 오랫동안 거래를 지속하고 있고, 한두명은 아직도 나의 제품을 구매하고 있다. 홀리우드의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기념품 판매장과 샌프란시스코의 피셔맨스 와프에 있는 기념품 판매장에 나의 양말이 걸려서 판매되었 던 것도 바로 매직쇼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