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재가 되려거든 편견부터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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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에 온지 벌써 3개월째, 그토록 좋아했던 태국에
와 있건만 매일 악몽에 시달리는 나였다.
꿈에 바이어 측의 매니저인 Maitri 씨가 매일 나타나
“브라이언, 도대체 당신 회사의 핸드폰은 왜 이렇게
불량률이 높은 건가요?”“당신이 이 곳에서 이번
프로젝트를 총 지휘하는 매니저이니 설명을 해보세요,
설명을~” 이렇게 나에게 호통을 친다.
난 그 날도 새벽에 잠을 깨서 이른 아침에
바이어 사무실로 출근할 생각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다시 잠을 청해도 Maitri 씨의 사나운 표정을 생각하니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이런 식의 악몽을 꾼 것이
방콕에 도착한 첫 날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었고, 난 악몽의 이유도 모른 채 매일 매일
걱정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난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태국은 너무 좋아했던 나라라서 이번 프로젝트를
하러 오기 전에도 스무 번 이상을 여행으로 온 바
있었다. 음식도 너무 맛있었고 모든 것이 저렴해서
아무리 돈을 써도 줄 지 않는 거 같아서 마치 황제가
된 기분이었다. 발 마사지를 매일 받아도 별로 부담이
없었고 무엇보다도 순박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좋았다.
그래서 거의 매년 여름 휴가 내지는 주말과 국경일이
이어진 연휴, 심지어 명절 연휴 때조차 태국으로
여행을 왔었다. 난 태국에 중독되었었다.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를 맡고 나서는 그렇게 좋아하던
태국을 빨리 떠나고 싶어졌다. 모든 것을 빨리 정리하고
한국으로 귀국하고 싶었다. 왜였을까?
여행으로 태국을 올 때는 난 항상 갑의 위치에
있었다. 내가 돈을 쓰는 입장이었고 태국이라는 나라는
을의 위치에서 나에게 여러 가지 상품과 서비스를 파는
입장이었다. 난 매번 태국에 올 때마다 친절하고
순박한 태국인들의 미소와 표정에 적응된 것이었다.
물론 을의 위치에 있는 태국인들로부터 말이다.
그런데 이번은 어떤가. 나는 태국 거래선에게 우리회사가
만든 핸드폰을 팔러온 것이고 같이 동행한 엔지니어들의
작업을 정리하고 조율하는 업무를 수행하러 온 것이었다.
즉, 나의 위치는 갑에서 을로 변한 것이다.
나는 뇌는 이런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더구나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못사는 태국의 상황을 머리
속에 자의적으로 그려넣고 편견을 키워간 것이다.
한국인들보다 못사는 태국인들이 어떻게 잘 사는
한국 사람인 나에게 호통을 칠 수 있을까라는 오만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유럽 거래선들로부터 클레임을 당하면 항상 긴장하던
나였지만, 무의식적으로 약간은 깔보았던 태국사람들이
나에게 클레임을 쳤을 경우에는 긴장보다는 맞대응을
해야 한다는, 편견으로 가득 찬 생각이 결국은
악몽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머리 속에 틀어 박힌 생각과
현실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이라고 할까.
나는 Maitri 씨의 호통을 귀중한 바이어의 클레임으로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괘씸하다라고 여긴 것을 아닐까.
유럽 바이어이건,아프리카 바이어이건, 아니면
남미의 바이어이건 결국은 우리 회사에 돈을 주고
물건을 사가는 아주 존귀한 바이어들인데
난 각 바이어들을 나만의 잣대로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 깊이 반성했고 생각을 고쳤다. 갖고 있던 편견을
모두 날려 버리고 그날 이후 최선을 다해 Maitri 씨의
의견을 프로젝트에 반영하고 본사에 요청했다.
더 이상 Maitri씨는 내 꿈에 나타나지 않았으며,
난 나머지 프로젝트 기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귀국할 수 있었다.
나에게서 악몽이 사라지고 총 9개월 동안의 태국 체류
기간이 다시 행복한 시간으로 바뀐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나의 위치를 올바르게 설정하고 말도 안되는 편견을
버렸을 뿐.
누구나 마음 속에 종류를 불문하고 편견을 키우고 있다.
어떤 종류의 작은 편견이라도 마음 속에 남아 있는 한,
비즈니스는 성공으로 이어질 수 없다.
진정한 글로벌 인재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마음 속의 편견부터 버려라.그리고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가를 직시하라.적어도 내가 갑의 위치에 있는지,
을의 위치에 있는지 만이라도 직시할 수 있다면 성공은
우리에게 한걸음 다가오게 된다.
Maitri 씨와 나는 아직까지 연락을 하고 있는 아주
친한 친구 사이다. 물론 그는 나에게 아주 친절하다.
내가 그때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기조차 싫다.
와 있건만 매일 악몽에 시달리는 나였다.
꿈에 바이어 측의 매니저인 Maitri 씨가 매일 나타나
“브라이언, 도대체 당신 회사의 핸드폰은 왜 이렇게
불량률이 높은 건가요?”“당신이 이 곳에서 이번
프로젝트를 총 지휘하는 매니저이니 설명을 해보세요,
설명을~” 이렇게 나에게 호통을 친다.
난 그 날도 새벽에 잠을 깨서 이른 아침에
바이어 사무실로 출근할 생각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다시 잠을 청해도 Maitri 씨의 사나운 표정을 생각하니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이런 식의 악몽을 꾼 것이
방콕에 도착한 첫 날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었고, 난 악몽의 이유도 모른 채 매일 매일
걱정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난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태국은 너무 좋아했던 나라라서 이번 프로젝트를
하러 오기 전에도 스무 번 이상을 여행으로 온 바
있었다. 음식도 너무 맛있었고 모든 것이 저렴해서
아무리 돈을 써도 줄 지 않는 거 같아서 마치 황제가
된 기분이었다. 발 마사지를 매일 받아도 별로 부담이
없었고 무엇보다도 순박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좋았다.
그래서 거의 매년 여름 휴가 내지는 주말과 국경일이
이어진 연휴, 심지어 명절 연휴 때조차 태국으로
여행을 왔었다. 난 태국에 중독되었었다.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를 맡고 나서는 그렇게 좋아하던
태국을 빨리 떠나고 싶어졌다. 모든 것을 빨리 정리하고
한국으로 귀국하고 싶었다. 왜였을까?
여행으로 태국을 올 때는 난 항상 갑의 위치에
있었다. 내가 돈을 쓰는 입장이었고 태국이라는 나라는
을의 위치에서 나에게 여러 가지 상품과 서비스를 파는
입장이었다. 난 매번 태국에 올 때마다 친절하고
순박한 태국인들의 미소와 표정에 적응된 것이었다.
물론 을의 위치에 있는 태국인들로부터 말이다.
그런데 이번은 어떤가. 나는 태국 거래선에게 우리회사가
만든 핸드폰을 팔러온 것이고 같이 동행한 엔지니어들의
작업을 정리하고 조율하는 업무를 수행하러 온 것이었다.
즉, 나의 위치는 갑에서 을로 변한 것이다.
나는 뇌는 이런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더구나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못사는 태국의 상황을 머리
속에 자의적으로 그려넣고 편견을 키워간 것이다.
한국인들보다 못사는 태국인들이 어떻게 잘 사는
한국 사람인 나에게 호통을 칠 수 있을까라는 오만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유럽 거래선들로부터 클레임을 당하면 항상 긴장하던
나였지만, 무의식적으로 약간은 깔보았던 태국사람들이
나에게 클레임을 쳤을 경우에는 긴장보다는 맞대응을
해야 한다는, 편견으로 가득 찬 생각이 결국은
악몽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머리 속에 틀어 박힌 생각과
현실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이라고 할까.
나는 Maitri 씨의 호통을 귀중한 바이어의 클레임으로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괘씸하다라고 여긴 것을 아닐까.
유럽 바이어이건,아프리카 바이어이건, 아니면
남미의 바이어이건 결국은 우리 회사에 돈을 주고
물건을 사가는 아주 존귀한 바이어들인데
난 각 바이어들을 나만의 잣대로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 깊이 반성했고 생각을 고쳤다. 갖고 있던 편견을
모두 날려 버리고 그날 이후 최선을 다해 Maitri 씨의
의견을 프로젝트에 반영하고 본사에 요청했다.
더 이상 Maitri씨는 내 꿈에 나타나지 않았으며,
난 나머지 프로젝트 기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귀국할 수 있었다.
나에게서 악몽이 사라지고 총 9개월 동안의 태국 체류
기간이 다시 행복한 시간으로 바뀐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나의 위치를 올바르게 설정하고 말도 안되는 편견을
버렸을 뿐.
누구나 마음 속에 종류를 불문하고 편견을 키우고 있다.
어떤 종류의 작은 편견이라도 마음 속에 남아 있는 한,
비즈니스는 성공으로 이어질 수 없다.
진정한 글로벌 인재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마음 속의 편견부터 버려라.그리고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가를 직시하라.적어도 내가 갑의 위치에 있는지,
을의 위치에 있는지 만이라도 직시할 수 있다면 성공은
우리에게 한걸음 다가오게 된다.
Maitri 씨와 나는 아직까지 연락을 하고 있는 아주
친한 친구 사이다. 물론 그는 나에게 아주 친절하다.
내가 그때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기조차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