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휴가가 아니다. 명절이후 일감도 적은데다가 3일짜리 워크숍 강의 일정마저 취소 되는 바람에 강사인 나는 졸지에 휴일포함 무직으로 8일을 보내야 했다. 이왕 이렇게 된거 철저하게 빈둥거리자는 심정에 동선을 집주변 반경 1km 이내로 선정하고 정말 하루하루를 스케쥴 없이 소일하며 살아봤다.

간만에 밀린 독서도 하고 VOD영화도 시청하고 얼씨구나 소치 동계올림픽 중계도 밤늦게까지 지켜봤다. 하지만 겉보기엔 늘어진 상팔자 였지만 결론은 역시 ‘못살겠다’였다. ‘사람이 생산성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이렇게 무기력해지는 구나!’ 라는 것을 실감케라도 하듯 3일차 부터는 등 언저리가 저리고 5일차로 접어들면서는 근질거림이 대퇴부를 지나 전두엽까지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아침에 눈을 뜨면 어딘가를 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정말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소중한 깨우침이 찾아왔다. 8일간의 백수생활에서 필자가 선명하게 느낀 부분은 바로 나 이외의 사람들이 저마다 생계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칠흙같은 새벽녘에 신문배달, 우유배달 하시는 분들이 역동적인 세상을 일깨운다. 이른아침부터 출근준비, 등교 준비로 아파트 주변은 분주하고 낮에도 택배기사, 각종 서비스 기사, 청소 및 관리 용역 사람들이 쉴새없이 내가 사는 곳을 들락거린다. 이사짐 센터 사람들 틈바구니로 방문영업사원들이 왔다갔다 하고 있다. 장사가 되든 안되든 점포는 쉼이 없고 길거리 사람들도 빠르게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전업주부 또한 나름 시간 스케쥴을 관리하니 아무도 한가롭게 나와 말을 섞고 놀아줄 이가 없다.

긴 인생의 쉬어가는 한자락에서 지켜본 나의 풍경화에는 이렇듯 정적인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서민들의 삶에서 이미 정서적인 부분은 조금씩 퇴색되고 있는 듯하다. 특정계층이나 부류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제나 팍팍하고 바쁜 일상을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이를 힘겨워 하면서도 그 패턴이 아니면 좀처럼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그들에게는 필연적 바쁨이 곧 생계인 셈이다.

지금 우리가 조금이라도 간헐적으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위치나 여건에 있다면 감사하도록 하자. 세상에는 나보다 몇배 많은 일을 하면서 더 적은 보수에 더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있다. 그래도 바쁜 그들이 있기에 세상이 잘 돌아가는 것 같다.
체험 백수8일은 필자에게 많은 교훈을 남겼다.

늘어지지 말고 뭐라도 해보자. 백수는 꽤나 피곤한 직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