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여름은 덥고 길다.

8월 중순이 지나면서 기온이 한풀 꺾였지만, 그래도 낮 최고 기온은 33도를 오르내린다. 지구 온난화 영향인지는 몰라도 일본의 경우 9월 초순까지 30도를 넘는 날이 많다.

6월 부터 3개월 이상 계속되는 습하고 더운 일본의 여름은 견디기가 어렵다. 그런 일본에도 여름이 되면 재미있는 이벤트가 많다.

평소 조용하게 지내던 동네 사람들이 여름이 되면 단체로 모여 활동을 한다. 여름 축제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다.

흔히 일본의 여름은 ‘마쯔리(축제 또는 의식)’와 ‘하나비(불꽃 놀이)’로 대표된다.

도쿄나 지방할 것 없이 웬만한 지역에선 수백년 전부터 내려오는 마쯔리가 열린다.

보통 3,4일 정도 진행된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하루종일 전통적인 춤을 추고, 장터를 열어 음식을 만들어 팔고 흥겹게 노는 자리다. 마쯔리를 통해 지역 유대감을 높이려 뜻이 있는 것 같다.

보통 8월 첫째 또는 둘째 주말에 많이 열린다. 마쯔리는 여름중에서도 가장 더운 시기에 개최된다. 아마도 ‘이열치열’에 목적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마쯔리와 함께 시민들의 관심을 모으는 행사가 불꽃놀이다.

여름 밤이 되면 전국적으로 전망이 좋은 강가나 공원 등에서는 경쟁적으로 불꽃놀이가 열린다. 일본 사람들은 사쿠라(벚꽃) 만큼 이나 불꽃놀이를 좋아한다.

불꽃놀이가 열리는 날이 되면, 시민들은 맥주 음료수 등 먹거리를 장만해 유카타(여름철용 기모노)를 입고 구경을 간다. 마치 예전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월 대보름이 되면 동네 단위로 모여 쥐불놀이를 즐기는 풍경과 비슷한 것 같다.

밤 하늘에 펑펑 터지는 불꽃을 보면서 일본인들은 인생의 ‘희열’과 ‘덧 없음’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절정을 이루면서 피었다가 한 꺼번에 떨어지는 사쿠라처럼 불꽃놀이를 좋아하는 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 여름 풍경은 오사카 고시엔에서 벌어지는 전국 고교야구 대회다.

예선을 거쳐 47개 지자체를 대표해 올라온 고교 야구팀들은 8월 초부터 고시엔에서 전국 최고를 뽑는다.

공영방송인 NHK는 전국 고교야구 시합을 하루종일 보여준다. 그만큼 전국적으로 인기가 높기 때문이다.

시합에 나온 팀 이나 지역 주민 모두 비장한 각오로 시합에 임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시합에 진 어린 선수들이 내년도에 다시 본선에 나오기를 맹세하면서 운동장 흙을 쓸어담아 돌아가는 모습이다.

여드름이 성성 난 청소년들이 굵은 눈물을 펑펑 쏟아내면서 아위워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동을 준다.

오사카는 도쿄보다도 기온이 2,3도 이상 높다. 시합이 열리는 2 주간은 연일 35도를 넘는 살인적인 더위다.

기자도 처음에는 왜 하필 이렇게 더운 여름에 어린 학생들을 더위 속에 내몰아 시합을 할까 궁금했다. 그런데 몇 차례 시합을 보면서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무더위 속에서 인내하는 과정을 교육시키는데 목적이 있지 않을까.

원래 지역 주민이 힘을 모아 단결토록 하는 행사는 농경사회의 특징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농촌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놀이문화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농악만 하더라도 농사를 지을 때 주민들이 단결하고 힘을 북돋우는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어느 사이엔가 한국에서는 공동체 놀이가 많이 사라졌다.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 지역 주민들이 서로 단합하고 협력하는 마당을 보기 힘든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 보다 훨씬 서구화가 빨리됐고, 경제적으로 선진화된 일본에서도 전통은 전통대로 잘 보존되고 있다. 당장 눈 앞에 이익이 안된다 해도 주민들의 연대감을 높여주는 놀이문화는 국가를 위해서도 커다란 자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