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주마간산 격으로 둘러 본 대만(Taiwan)의 몇몇 곳을, 가이드 설명과 안내 브로셔를 기초해 순전히 내 방식대로 얄팍하게 정리해 보았다. 처음 대만 투어에 나서는 분들께 아주 조금이라도 도움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장개석(蔣介石)을 빼놓고 대만을 얘기할 수는 없다. 대만의 초대 총통인 장개석에 관한 기록 사진, 유품 그리고 동상이 있는 ‘중정기념당’을 찾았다. ‘中正’은 장개석의 본명이다. 1975년 장개석 총통이 서거하자 그의 위업을 기리기 위한 기념당 설립이 추진되었고, 1980년 4월 5일 정식 개관했다. 중정기념당은 대만 역사와 국민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선 꼭 둘러보아야 하는 타이베이의 명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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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외관이 시선을 압도했다. 한 개인의 기념관으로서는 과하게 크다는 생각도 들었다. 축구장의 약 35배, 7만 5천여 평 정도 넓이란다. 처음 이걸 만들 때 굉장히 말들이 많았다고 한다. 1975년 장개석이 서거하고 1977년에 아들 장경국이 총통 자리를 이어받고나서 공사가 시작됐다. 타이베이 중심지인 이곳엔 민가도 있었다. 안 팔려는 사람도 있었으나 국가에서 반강제적으로 수용하다시피 하여 일대를 헐어버리고 지었다. 건물은 그리 크지 않다. 높이 75m에 500평 건물 빼고는 365일 24시간 개방하는 근린형 개방 공원이다. 자유광장에는 중정기념당 외에도 연극과 콘서트 등을 위한 국립극장과 국립콘서트홀이 있다. 서울 청계천 처럼 처음 조성할 땐 반대가 많았다. 하지만 지어놓고 보니 다들 좋아한다 했다. 다양한 야외 행사나 대규모 집회도 이곳에서 열린다. 또한 조경이 아름다워 산책과 조깅을 즐기는 시민들의 힐링장소로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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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서부터 89개의 계단을 올라서야 장개석 동상이 있는 기념당에 들어설 수 있다. 89라는 숫자는 바로 장개석이 세상을 뜬 나이다. 거대한 동상 앞에 섰다. 때마침 근위병 교대식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근엄한 표정의 근위병들이 절도있게 임무를 수행 중이다. 미국 국회의사당에 있는 링컨 동상의 시선이 백악관을 향하고 있듯 장개석 동상의 시선도 우리의 청와대랄 수 있는총통부를 향하고 있다. 죽어서도 국가 안위를 위해 노심초사한다는 뜻이란다.
1949년 대만으로 건너 온 장개석은 곧장 계엄령을 내렸다. 세계에서 계엄령을 가장 오래 유지한 나라가 대만이다. 1949년부터 1987년까지 긴긴 세월이 계엄 하에 있었다. 밤11시부터 아침 5시까지 통금도 있었다. 장발도 단속하고 풍기문란도 엄히 단속했다. 장발이나 풍기문란 단속은 어째 낯설지 않다. 장발단속을 피해 골목길로만 숨어 다녔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기 때문이다. 장개석은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내는 진수성찬이 마음에 안들었다. 하여 꽃잎이 다섯개인 나라꽃, 매화처럼 반찬을 5개로 줄인 이른바 ‘매화식단’을 개발해 국민들에게 간편식을 장려했다. 분식과 혼식을 장려했던 우리네 옛날 사정과 닮은 꼴이다. 이름하여 장개석의 ‘신생활운동’이다. 우리의 ‘새마을운동’도 대만의 ‘신생활운동’을 벤치마킹한 것이라데…
그는 1975년까지 총통의 자리를 유지했다. 즉, 죽는 그날까지 종신 총통이었다. 사후 그의 아들 장경국이 2년 후인 1977년 선거를 통해 역시나 종신 총통으로 추대됐다. 그러나 재임기간을 10년도 못 채우고 세상을 떴다. 대만인들은 장경국 총통이 좀 오래 살았더라면 대만 경제가 더 나아졌을 것이라고들 한다. 왜냐하면 장개석은 대만을 군사강국으로만 만들려 했지, 경제발전에는 관심이 덜했다. 왜? 여기서 계속 안주하는 게 아니고 머릿속은 온통 다시 본토를 수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기 때문이이라고.
장남 장경국도 그걸 알았다. 그러나 도저히 본토를 자체 힘으로 수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재임기간 동안 경제발전을 이룩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짧았다. 그 다음 총통이 된 국민당 출신 이등휘 시절, 대만의 경제도, 정치도 무너져 내렸다. 대만인들은 장경국이 후임자를 잘못 선택한 결과라 했다.
장개석이 욕도 많이 먹었지만 발전에 기여한 공도 크다. 우리의 박정희와 비슷하다. 국가재건을 위해 박정희는 많은 노력을 했다. 돈 빌리러 서독으로, 대만으로 달려 갔다. 기념당 안 기록사진에서 그런 박정희의 모습도 발견했다. 대만에 와서는 돈도 빌리고 식량도 요청했다. 한 나라의 지도자로 남의 나라에 달려가 머리 숙여 돈 빌리고 식량 지원을 요청할 때 기분은 어땠을까? 말이 요청이지 구걸이나 다름없었을 터. 기록 영상이 머릿 속에 오버랩되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 앞에서 선 박정희는 충혈된 눈으로 연설했다. “국가가 부족하고 내가 부족해서 여러분이 이 먼 곳까지 나와 고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견뎌 내십시오. 곧 여러분을 조국으로 모셔 오겠습니다” 전시실에는 박정희가 장개석에게 선사한 훈장도 보였다. 돈 빌려주어, 식량 지원해 주어 고맙단 표식이었을까?
장개석 역시 나라를 발전시킨 공로는 크나 과오도 만만치 않다. 5·18의 아픔이 있는 우리처럼 대만에는 2·28의 아픔이 있다. 대만 2·28사건은 1947년 2월 28일 정부의 폭압에 맞선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남은 항쟁’, 이른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 사건이다. 많은 사람이 죽었다. 장개석에게 이러한 과오는 늘 입안에 박힌 가시처럼 자신을 괴롭혔을지도 모른다. <계속>
중국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나고 이적 표현물 4000여 쪽을 갖고 있던 민주노총 전직 간부가 지난달 재판에 넘겨진 것으로 알려졌다.수원지검 공공수사부(부장 허훈)는 지난달 31일 국가보안법 위반(특수 잠입·탈출, 찬양·고무 등) 혐의로 A씨를 불구속기소 했다고 18일 밝혔다. A씨는 중국 광저우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나고 이적 표현물 12건을 소지한 혐의를 받는다.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실이 법무부에서 받은 공소장에 따르면 A씨가 2023년 3월 24일부터 같은 달 25일까지 소지하고 있던 '장편사화 단군'은 2003년 발행된 519쪽 분량의 이적 표현물로, '고조선의 시조인 단군을 다루면서 신념과 인간이라는 부제로 김일성을 찬양·미화'하는 내용을 담았다.또 427쪽 분량의 1988년 발행된 '김일성선집 1권'은 김일성 주체사상의 발생연원, 발전과정, 구현과정 등을 서술하고 있으며 혁명투쟁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인민대중이 조직·동원돼야 혁명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으며 북한의 민주주의 민족통일전선 형성을 방해하는 온갖 현상과 비타협적으로 투쟁하겠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이 밖에 A씨는 '정치경제학개론-주체의정치경제학' '주체사상 총서' 2~10권 등 총 3959쪽 분량의 이적 표현물을 소지하고 있던 것으로 조사 결과 드러났다.이와 함께 검찰은 A씨에게 2018년 9월 광저우 월수공원 근처에서 북한 공작원을 접선해 지령을 받고 귀국한 민주노총 간부 B씨, 민주노총 경기중부지부 사무차장 C씨와 함께 북한 공작원을 만난 혐의도 적용했다.검찰은 이들에 대해 "반국가단체의 구성원과 회합한 후, 지령받거나 목적수행을 협의하고 대한민국으로 잠입한 것
18일 오전 르노코리아 부산공장. 무인운반차(AGV) 200여 대가 조립공장을 누비고 있었다. 르노코리아가 지난해 12월부터 5주에 걸쳐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만든 전기차 혼류생산 현장이다. 올해 하반기부터 북미 수출용으로 생산될 전기차 ‘폴스타4’부터 르노코리아의 전기차 생산 프로젝트 ‘오로라’까지 책임지는 설비들이다. 이해진 르노코리아 제조본부장은 “현재 연간 11만 대 규모의 공장 생산능력을 장기적으로 20만 대까지 늘릴 것”이라며 “부산공장은 전기차 생산기지이자 수출 거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이날 르노코리아는 전기차 생산의 시작점이 될 부산공장의 ‘4개 플랫폼 8개 차종’ 생산 시스템을 공개했다.르노코리아는 2015년부터 다차종 생산 체계를 갖춰왔다. 5년간 집중 투자로 4개 플랫폼 7개 모델이라는 유연 생산 체계를 구축했다. 올해는 스웨덴의 프리미엄 전기차 브랜드 폴스타의 폴스타4 수탁생산과 함께 르노코리아가 추진하는 신차 개발 사업인 ‘오로라 프로젝트’에 맞춰 전기차 생산능력까지 갖추게 됐다.실제로 조립공장 현장에서는 하나의 라인에 다른 4종의 모델(그랑콜레오스, 아르카나, SM6, QM6)이 제조되고 있었다. 가솔린, 디젤, 하이브리드 기반의 차량이 번갈아 가며 작업자들의 손을 거쳤다. 시스템의 명령을 받은 AGV는 조건에 맞는 부품 카트를 결합해 생산라인에 배송하고, 배송된 카트는 생산라인의 차량 모델을 따라 이동하는 구조다.500~600㎏인 배터리 무게를 감당하기 위한 리프트 장비와 전기차의 늘어난 전장과 차폭을 적용한 생산 설비들도 대폭 반영됐다. 특히 전기차가 차체 무게를 줄이기 위해 알루미늄 소재를
경상남도가 관내로 이주한 우주항공청 직원의 조기 정착을 돕기 위해 각종 지원정책을 펼친다고 18일 발표했다. 이주정착금과 자녀장학금, 양육지원금 등을 이달 말부터 본격적으로 지급한다.타 시·도 등에서 이주해온 우주항공청 직원은 가족 이주정착금으로 동반가족 1인당 200만원(최대 800만원), 자녀장학금으로 초·중·고 자녀 1인당 월 50만원(최대 2년), 양육지원금으로 미취학 자녀 1인당 월 50만원(최대 2년)을 지원받을 수 있다.올해부터는 경남 진주시와 사천시도 이주정착금과 자녀장학금을 지급한다. 진주시와 사천시에서 지급하는 이주정착금은 가족뿐만 아니라 우주항공청 직원 본인도 지급 대상에 포함됐다. 이에 따라 초·중·고 자녀 2명 및 배우자와 함께 이주해온 4인 가족 직원이 경상남도와 진주시 또는 사천시로부터 받는 총지원금은 4100만원에 달한다.지원 대상은 2년 이상 계속 타 시·도에 거주하다가 우주항공청 개청일로부터 3년 이내 경남으로 전입(주민등록)해 6개월 이상 거주한 동반가족이다. 자녀장학금은 경남 소재 학교에 6개월 이상 재학한 자녀에 한해 지원한다. 지원금을 받은 사람이 6개월 이내에 경남 외 지역으로 전출하면 지원금은 전액 환수된다.지난해 5월 사천에 문을 연 우주항공청의 정원은 294명이며 현재 239명이 일하고 있다. 지원 대상은 진주 62명, 사천 79명 등 141명 정도로 추정된다.창원=김해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