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버림받은 나>
거두는 것에 대하여
이른 봄 양수리로 사진을 찍으러 가다가
아주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집앞 텃밭에 고추를 수십 포기 심었는데
모두 거두지를 않고 겨우내내 저렇게 방치하여
고추들이 못쓰게 되었다
주인이야 무슨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다 고추를 거두지 못한 것이겠지만
고추의 입장에서 보면 참 안타까운 일이다


어차피 태어나고 자라고 푸르게 고추 맺어
사람들이 손에 따져서 푸른 고추는 푸른 대로
빨간 고추는 빨간대로
유용하게 쓰이기를 바랄 것이다

고추의 존재의 가치는
음식에서 빨갛고 매웁게 빛깔과 맛깔을 내는 데 있다
태어나 한껏 자랐는데 빛도 보지 못하고
저렇게 벌판에서 내버려지는 게 아니다
빨간 고추는 제대로 익은 고추이고
희끗한 고추는 채 빨갛게 익기 전에
추위가 닥쳐 말라죽은 것이다
설령 고추에 무슨 병이 들어 쓰지 못할 정도이면
뽑아서 곱게 생을 다하게 해 주어야 한다

거두어 들인다는 것
그것은 거두어 들여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
소중하게 거두어 들여
거두어들여지는 사물에 대한
최대한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고추를 심어 가꾸다가
저렇게 팽개치는 것은 고추에 대한 사랑이 아니다

거두어 들인다는 것
나를 거두어 들일 그 어떤 존재를 위하여
서로가 서로를 믿는 신뢰인 것이다
나는 네가 나에 대하여 갖는 기본심성이 어떠리라 생각할 때
너는 내가 너에 대하여 갖는 기본심성을 어떠리라 생각하는가?
이유야 사연이야 어떨지라도 우리는 누구나
서로가 서로에게 저 버려진 고추처럼은 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