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마/스/테




안녕하세요. 풍류가객 강경태 입니다.



이번 칼럼은 저의 대학생활 중에서 몇 가지를 예쁘게 미화(?) 해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386세대인 저는 학생의 본분인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그런 나쁜(?) 학생이었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시점에서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아름답게 몇 자 적어 보았습니다.



이 글은 대학생들을 위해서 쓰여진 내용이지만, 여러분들의 학창생활과 현재를 다시 되돌아 보는 기회도 되었으면 합니다. 여러분들의 건투를 기원합니다.



본 칼럼은 전교학신문에 게재된 내용임을 알려 드립니다.





University is Universe





최근 필자가 운영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어느 고등학교 여학생이 올린 글을 보면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가장 듣기 싫어하는 질문은 “너희들의 꿈은 무엇이니?” 라는 것인데 그 이유는 자기 친구들의 약 70% 정도가 정말로 생각하는 꿈이 없기 때문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이다.




다른 이야기는 잘 아는 지인이 대학생 인턴과 얼마간 함께 생활한 적이 있는데 업무능력도 뛰어나고 커뮤니케이션도 원활하게 잘 하는데 그들에게 무엇인가 아쉬운 점이 있는 것 같아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것은 젊은이로서의 커다란 포부와 배포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경제가 아무리 어렵고 취업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인생의 목표를 대기업 또는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과 포부가 같은 의미를 가진다는 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나도 대학을 다니고 졸업을 했지만 학교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입학을 할 때 면접을 보았는데 “대학에 들어온 목적이 무엇인가?” 라는 주제로 글을 써서 제출하는 것이었는데, 나는 ‘진리탐구’ 라는 내용으로 열심히 문장을 만들어서 제출했다.




이렇듯 대학시절 나의 화두는 ‘진리’ 였다.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 인가 고민을 하다가 철학과 종교에 그 지름길이 있다고 판단되어 열심히 관련서적을 탐독하고 명상을 하면서 진리와 나와의 싸움에서 그 경계를 뛰어 넘는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정말 열심히 노력을 했다.




또한 진정한 진리의 깨달음이란 세상에 대한 애정과 그 질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 때문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종교, 과학 등 우리 삶을 둘러싼 모든 현상에 대한 이해를 하고자 노력했고, 격동의 80년대에는 나름대로 사회적 실천을 도모하기도 했다.




문화에 눈뜬 시기도 대학에 진학하면서 였다. 음악에 대해서는 원래 관심이 많았지만 대학시절에 더욱 다양한 음악을 접하는 계기를 가지게 되었다. 특히 당시 김민기, 한대수 라는 포크가수의 음악과 삶은 아직도 나에게 큰 영감과 울림을 주고 있다.




그 밖에도 문학, 영화, 사진 등 문화예술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며, 방학동안에는 건축공사장에서 노동일을 해서 학비에 보태기도 했고, 선배와 경기도를 도보로 일주하는 여행도 다녔다.




대학을 졸업할 때에 내가 얻은 것은 학점도 아니고 실력도 아니었다. 등교를 하면 수업시간표에 관계없이 곧장 도서관으로 직행을 해서 책을 보았다. 대학시절 최고의 목표는 진리의 깨달음과 학교도서관의 책을 모두 섭렵하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는 성공적인 대학생활을 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대기업과 벤처기업을 거쳐서 어떤 조직에서도 나름대로 적응을 잘하고 성과도 만들어 내는 것은 바로 대학시절의 치열했던 삶이 큰 도움을 주었다.




다양한 분야의 독서와 그 내용에 대한 실존적인 고민이 당시에는 힘도 들고 해답을 찾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바로 그런 결과물들이 오랜 세월 숙성이 되어 직장생활에서 타인들보다도 창의력과 상상력 그리고 문제해결 능력에서 큰 경쟁력을 가지게 되었다.




문화예술에 대한 다양한 관심과 열중이 대학 당시에는 이러한 관심들이 사회생활에서 얼마나 효용성이 있을 것인가 하는 의구심도 있었으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상사, 동료, 부하직원 특히 거래처 대표들과의 커뮤니케이션과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어 가는데 좋은 도구가 되었다.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회사동료들의 크고 작은 개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해결사로서의 역할을 가능하게 하였다. 지식은 나눔이며 실천이라는 사상이 대학시절부터 나의 마음속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갈고 닦은 지식과 경험들이 동료들의 고민과 어려움의 해결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아직도 전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게 지속되고 있다.




또한 ‘전체에 대한 통찰’ 이라는 개인적인 슬로건은 대학당시 진리에 대한 탐구가 바탕이 된 것으로 다양한 현상 속에서 항상 큰 그림을 그리고 바라보려는 개인적인 습관이 자연스럽게 구체적인 업무나 과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만약 대학생활에서 전공서적 몇 번 더 보고 그래서 지금보다 좀 더 나은 학점이 되었다면 아마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대학은 취업을 위한 기능주의적인 사관학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효용성의 의미라면 대학이라는 존재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대학은 미래의 인생을 올바르게 그리고 인간답게 살아가는 원칙과 기본을 배우는 곳이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병폐와 문제점의 근본적인 원인은 기본과 원칙을 준수하지 않는 데에 있다.




대학(University)의 어원은 우주(Universe) 라고 한다. 적어도 대학의 젊은이라면 또한 뜨거운 피가 펄펄 끓는 청춘이라면 한번쯤은 우주와 진리를 내 큰 가슴 안에 품어보는 일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 돌이켜 보면 대학시절이 내 인생에서 가장 뜨겁게 보낸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어떤 사람들은 25살에 이미 죽어버리는데 장례식은 75살에 치른다(Some people die at 25 and aren’t buried until 75)” – 벤자민 프랭클린




여러분들은 어떤 꿈과 포부를 가지고 있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