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 총기난사 수사 닷새째 증오범죄 입증 '답보'…"성중독, 의학적 질환 아냐"
"희생자 8명중 6명이 아시아계인데" 증오범죄 규탄 확산…"적용기준 개선 등 과제"
증오범죄 인정 그동안 '바늘구멍'…이번 사건 수사 향배가 시험대 될듯
'아시아계 표적' 증오범죄에 신중론?…'면죄부 주나' 논란 확산
한인 여성 4명을 포함해 8명의 목숨을 앗아간 애틀랜타 총기난사가 21일(현지시간)로 닷새째가 되지만 증오범죄 적용 여부는 아직도 가시적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총격범인 21살의 백인 로버트 에런 롱은 살인 8건 등의 혐의로 기소돼 재판에 회부됐으나 증오범죄 혐의가 가중될지는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면에서 반(反)아시안 정서와 맞물려 아시아계 표적 범죄가 급증한 가운데 범행동기와 관련, 증오범죄 적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성중독'이었다는 총격범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자칫 백인 용의자의 증오 범죄에 대한 또 한 번 면죄부를 제공하는 셈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현행법상 입증 문제에 어려움이 적지 않아 법·제도적 개선의 필요성도 지적되고 있다.

◇ 수사당국, 아직 증오범죄 증거 미확보
미 수사 당국은 애틀랜타 총격범에 증오범죄 혐의를 적용하기 위한 증거를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는 게 AP 통신의 20일자 보도다.

AP는 법무 당국자 2명을 인용해 연방 수사관들이 지난 16일 아시아계 6명을 포함, 8명의 사망자를 낸 총격범 롱에게 증오범죄 혐의를 적용하는 데 필요한 증거를 아직 찾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수사관들은 증오범죄 혐의로 기소하는 방안을 전면 배제한 것은 아니며, 법률적 제약에 부딪힌 상황이라고 AP는 전했다.

통상 검찰은 증오범죄 혐의로 기소하는 데 만전을 기하고자 용의자의 인종차별이 드러난 문자 메시지, 온라인 게시글, 증언처럼 명백한 증거를 쫓는데, 롱에 대해서는 사건 발생 사흘째인 19일 현재 이런 증거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AP는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총격범이 범행 동기라고 주장하는 '성 중독'(sex addiction)'이 의학적 질환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CNN 방송은 19일 보도에서 성 중독이란 용어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살해범들이 이를 범죄의 동기로 주장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지만 이는 인정되지 않는 정신질환적 진단이라고 꼬집었다.

연방 및 주 수사 당국은 범행 동기를 놓고 증오범죄를 포함해 다양한 가능성을 들여다보고 있다.

사건 직후 총격범의 '성 중독' 발언을 공개하며 증오범죄 혐의 적용에 거리를 두는 듯한 태도를 보이던 경찰은 '용의자를 감싼다'는 비난 여론이 일자 증오범죄 기소 가능성을 열어둔 바 있다.

◇ 유독 아시아계엔 증오범죄 적용 '바늘구멍'…이번엔 다를까
미국에서 아시아계를 노린 증오범죄가 늘어나고 있지만 막상 체포나 기소 단계에서 혐의로 적용되지 않는 사례가 많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분석했다.

'증오 및 극단주의 연구센터'는 지난해 아시아계를 겨냥한 증오범죄가 149%나 증가한 것으로 집계했다.

인권단체 '아시아태평양계 증오를 멈추라'에도 지난해 3월 19일부터 올해 2월 2일까지 거의 3천800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하지만 유독 아시아계를 노린 범행 중 수많은 사건이 체포나 기소 단계에서 증오범죄 혐의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NYT는 지적했다.

그 이유로는 우선 반(反) 아시아계를 뜻하는 공통된 상징이 없다는 점에서 흑인이나 라틴계를 노린 증오범죄보다 입증이 어렵다는 게 꼽힌다.

피츠버그대 법학 교수인 왕루인은 "흑인 반대, 유대인 반대, 동성애 반대 증오범죄는 전형적이며, 좀더 분명한 형태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증오범죄 혐의적용 기준을 낮추고, 처벌을 강화하며, 경찰 예산을 증액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런 가운데 애틀랜타 총기난사가 조지아주에서 새로 마련된 증오범죄법의 첫 번째 큰 시험대가 될 수 있다고 AP통신이 내다봤다.

이번 사건에서 총격범은 '성중독'을 범행 동기로 주장했다고 경찰이 밝혔지만, 희생자 대부분이 아시아계 여성인 점에서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이런 설명에 대해 회의적이며 대중은 증오범죄 적용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많은 주(州)와 마찬가지로 조지아주 증오범죄법은 독립적인 증오범죄를 규정하지 않는다.

대신 범죄자가 다른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을 때 가중 처벌을 허용하고 있다.

'아시아계 표적' 증오범죄에 신중론?…'면죄부 주나' 논란 확산
◇ "참을만큼 참았다"…거리로 나선 아시아계 '연대 강화'
미국 내 아시아·태평양계(AAPI) 지역사회 그룹이 이끄는 180여개 단체는 백악관에 3억 달러(약 3천390억원) 규모의 별도 예산 확보를 요청하고 나섰다.

AAPI 지도자들은 19일 애틀랜타를 찾은 조 바이든 대통령,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가진 현지 간담회에서 이러한 요구사항을 담은 서한을 전달했다.

길거리에서도 "아시아계 증오를 멈춰라"(Stop Asian Hate) 구호가 연일 울려 퍼지고 있다.

20일 주말을 맞아 애틀랜타와 피츠버그, 샌프란시스코 등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아시아인을 겨냥한 증오범죄에 분노를 표시했다.

특히 피츠버그 집회에는 한국계 여배우 샌드라 오가 깜짝 등장해 연사로 나섰다.

그는 2분여 동안 구호를 외치며 수백 명의 군중을 이끌었다.

소셜미디어(SNS)에서도 '아시아인 혐오를 멈춰라'(#StopAsianHate)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인종 혐오범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퍼지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