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봄을 맞아 문단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들이 속속 새 작품을 들고 돌아왔다. 중견 소설가 편혜영·조해진 작가부터 젊은 시인과 소설가들까지 면면도 다양하다.
등단 22년째를 맞은 편혜영은 여섯 번째 소설집 《어쩌면 스무 번》(문학동네)을 출간했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쓴 단편 가운데 성격이 비슷한 여덟 편을 묶었다. 서스펜스 소설의 대가답게 익숙했던 공간과 관계를 낯설고 새롭게 느끼도록 배치해 묘한 긴장을 조성한다. 2019년 김유정문학상 수상작 ‘호텔 창문’을 비롯해 수록 작품 모두 인물들이 현재 머물던 공간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며 시작된다. 이동을 통해 과거 가족과의 관계나 실수를 저질렀던 자신과의 관계가 이전과 다른 공간에서 거대한 위협이 돼 다가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젊은작가상, 이효석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받은 조해진 작가도 네 번째 소설집 《환한 숨》(문학과지성사)을 내놨다. 2019년 김승옥문학상 우수상을 받은 ‘환한 나무 꼭대기’와 자전소설 ‘문래’를 포함해 아홉 편의 짧은 소설이 실렸다. 작가의 시선은 암투병 중인 중년 여성, 수은 중독이 뭔지 모른 채 일해야 했던 미성년 노동자 등 소외된 이들의 삶에 머문다. 하지만 이들이 처한 그늘과 어둠 속에 연쇄적으로 전해지는 작가의 온기 어린 호의를 통해 삶이 여기서 쉽게 끝나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문화예술위원회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는 차세대 문학인 8인의 작품집 《AnA》(은행나무)를 출간했다. 은행나무의 문학잡지 《악스트》와 연계해 조해주 주민현 시인과 변미나 임선우 전예진 조시현 조진주 지혜 등 소설가까지 8명 여성 신예 작가의 신작 시와 소설을 담았다.
이들은 모두 현재를 관통하는 ‘연대’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우리의 삶은 어떻게 통합될 수 있는지 서로 묻고 답한다. 인터뷰, 수필, 일러스트와 대중문화 평론, 리뷰까지 작가들이 쓴 산문도 함께 선보이며 이들의 작품 세계에 깊이 들어갈 수 있도록 구성했다. 2017년 한경 신춘문예로 등단해 지난해 내놓은 시집 《킬트, 그리고 퀼트》(문학동네)로 신동엽문학상을 받은 주민현 시인도 《AnA》를 통해 신작 시 ‘오래된 영화’ 외 9편을 공개했다.
“우리는 건물을 만들지만, 다시 그 건물이 우릴 만듭니다(We shape our buildings, thereafter they shape us).”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이 폭격으로 폐허가 된 의사당을 다시 짓자며 했다는 이 말은 묘한 기시감이 들게 한다. 교보문고를 연 대산 신용호 선생이 남긴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와 어딘가 닮아서다. 아마도 책과 건축은 ‘공간’이라는 본질을 공유하기 때문일 터다. 그 말대로 종이를 층층이 겹친 책이라는 무형의 공간이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면, 건물은 물리적 공간에 머무는 이들의 사고와 감각을 이끈다.서울 을지로7가 흥인지문 근처에 2014년 들어선 건축물이 하나 있다. 처음엔 모두가 반신반의했다. 500년 한양도성 성곽의 멸실된 역사를 되살리지도, 82년 동대문운동장의 시간선을 이어가지도 못했다는 이유로 눈총을 받았다. 5000억원을 쏟아부어 마치 하늘에서 불시착한 미확인 비행물체 같은 애물단지를 세웠다는 놀림도 받았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이야기다. 11년을 보낸 DDP는 어떤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을까. ‘서울리스타(Seoulista)’의 삶을 어디로 이끌었을까. 365일 가동되는 도시의 ‘디자인 엔진’세계 주요 도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하나씩 갖고 있다. 끊임없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낸다. DDP를 보자. 이달 기준 DDP 누적 방문객은 1억2499만 명. 매년 서울시 인구가 이곳을 찾았다. 역사의 기억을 과감히 들어낸 공간에 사람이 몰리는 것은 역설적으로 ‘디자인 서울’을 내세웠던 DDP의 역할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는 뜻이다. 글로벌 디자이너와 예술가, 럭셔리 브랜드, 국제 행사들
‘환유(換喩)’는 에두르는 표현이다. 전하려는 낱말을 입으로 직접 말하는 대신 가장 가까운 개념을 건네 상대방의 머릿속에 떠오르게 하는 수사다. 건축가 자하 하디드(1950~2016)는 2007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사진) 현상설계 공모에서 자신의 구상을 ‘환유의 풍경(Metonymic Landscape)’이라고 이름 붙였다. 은빛 곡선이 흐르는 기울어진 벽, 경계가 사라진 비정형의 건축이었다.처음엔 이해받지 못했다. 500년 도성의 시간, 80년 스포츠 현대사의 시간 위에 난데없이 내려앉은 UFO 같다는 반응은 감탄보다는 조소에 가까웠다. 직선과 축, 기념비적 형태에 익숙했던 시선으로는 이 곡선의 숨은 의미를 읽어내기 어려웠다.하디드는 개의치 않았다. 이라크 출신 ‘아랍계 여성’인 하디드는 원래가 중심의 바깥에서 세계를 관찰해 온 건축가였다. 서유럽·백인·남성의 시각에서 주로 전개돼 온 보수적인 건축계에 발을 들일 때부터 2004년 여성 최초로 ‘건축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을 때까지 줄곧 외계인 취급을 받아 왔기 때문이다.하디드는 서울을 과거의 형식이나 전통의 관점으로 설명하려 들지 않았다. 대신 그가 본 것은 끊임없이 겹치고 충돌하며 ‘물 흐르듯’ 나아가는 도시의 속도감이었다. 새벽엔 패션과 디자인 산업의 동선이 교차하고, 해질녘부터는 미디어아트와 축제가 펼쳐지는 동대문의 역동적인 리듬을 디자인 언어로 삼아 서울의 미래를 바라본 것이다.낯설었던 비정형 건축이 11년이 지나 도시의 일부로 스며든 것은 이제 그 환유가 점차 읽히고 있기 때문이다. DDP의 곡선에선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고, 넓어졌다 좁아지는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