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기억보다 망각 바란 신부…구내 성직자묘지 대신 군위묘원 매장 당부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길"…故 이문희 대주교 유언장 공개
천주교 대구대교구는 지난 14일 선종한 전임 교구장 고(故) 이문희 바울로 대주교의 유언장을 16일 공개했다.

그는 미리 남긴 유언장에서 자신이 잘못한 일에 대해 너그러운 용서를 구하면서 세상의 기억에서 잊혀질 수 있도록 많이 사람이 자주 찾는 교구청 내 묘역보다는 거리가 먼 경북 군위의 가톨릭 묘원에 묻힐 수 있도록 간청했다.

이 대주교는 유언장에서 "그동안 교구의 책임자로 있으면서 나름대로 힘껏 잘하려고 했습니다마는 지나온 후 돌이켜 생각할 때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면서 "교구를 위해서 잘못한 것, 또 교구의 사람들을 위해서 잘못한 것들에 대해서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요청했다.

이 대주교는 "하늘나라에 대한 열정이 커서 그런 것도 아닌데 나는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있었다는 기억이 계속 남아있는 것을 바라지 않는 버릇이 있다"며 "그래서 주교관 구내에 있는 성직자 묘지에 묻혀서 많은 사람이 자주 나를 생각하는 것을 좋아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벌써 오래전부터 나는 군위 가톨릭 묘원에 가고 싶다고 했다"며 "혹시라도 주교님들 옆에 아직 자리가 있으므로 좋은 곳에 묘를 둔다는 생각으로 내가 오래전부터 부탁한 군위로 가지 못하게 할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특별히 유념해주실 것을 다시 청한다"고 당부했다.

이 대주교는 "제가 지금까지, 제가 일을 하여 얻은 것으로 이렇게 부유하게 잘살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모두가 교회 덕택에 이렇게 모자람이 없는 생활을 지금까지 하고 있으며 그리고 많은 사랑을 받고 살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사랑에 대해서 깊이 감사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땅의 교회가 잘되도록 사랑의 힘을 더 키워가도록 힘써달라"면서 "마지막 날 하느님 앞에서 모두가 함께 만날 수 있기를 믿고 바란다"고 맺었다.

1935년생인 이 대주교는 이틀 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1965년 사제품을 받았고, 1972년 주교로 승품했다.

1985년 대구대교구 대주교에 취임한 뒤로 이듬해 대구대교구장에 착좌했다.

그는 대주교로 있는 20여 년간 67개 본당을 설립하며 지역에 천주교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노력했다.

고인의 장례미사는 17일 오전 10시 30분 주교좌 범어대성당에서 거행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