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 지명

배우 윤여정(74)이 영화 데뷔작인 김기영 감독의 '화녀'(1971) 이후 50년 만에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는 기록을 썼다.

지난해 한국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4관왕을 차지했던 '기생충'이 이루지 못한 유일한 성과다.

'화녀' 이후 50년…한국 배우 최초 아카데미 후보까지
윤여정은 자신을 '노배우', '생계형 배우'라고 표현하곤 했다.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55년째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현역 배우이니 '노배우'라는 말이 틀리지는 않지만, 70대인 현재까지 그처럼 정력적으로 활동하며 성과를 이뤄내는 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1971년은 최고의 전성기였다.

그에게 여우주연상과 신인상 등을 안긴 영화 '화녀'는 물론 드라마 '장희빈'으로 인기와 스포트라이트를 누리던 윤여정은 1975년 가수 조영남과의 결혼과 미국행을 선택하면서 공백기를 갖는다.

여배우가 결혼하면 은퇴가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13년 만에 이혼한 뒤 홀로 두 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연예계에 복귀해 역할을 가리지 않고 '억척스럽게' 연기해 온 지난 시절을 이르는 말이 '생계형 배우'다.

'화녀' 이후 50년…한국 배우 최초 아카데미 후보까지
'미나리'에서 윤여정은 미국 남부 아칸소주 시골로 이주한 딸 모니카(한예리) 부부를 돕기 위해 한국에서 건너간 할머니 순자를 연기했다.

윤여정은 '굳세어라 금순아'(2005)와 '내 마음이 들리니'(2011) 등의 드라마에서도 할머니 역할로 시청자들의 눈물을 쏙 빼놓은 적이 있다.

그는 당시 할머니 역을 처음 연기하며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증조할머니를 떠올렸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미나리'에서도 손자 데이비드(앨런 김)가 그랬던 것처럼 증조할머니를 '냄새가 난다'며 탐탁지 않게 여겼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순자는 정 감독의 할머니에게서 비롯된 인물이지만 감독은 자신의 할머니를 흉내 낼 필요가 없다고 했고, 윤여정 역시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영화에 활력을 더하고 극적 변화를 만드는 순자를 전형적이지 않게 연기하면서 호평받은 윤여정은 지금까지 32개의 연기상 트로피를 받았다.

'화녀' 이후 50년…한국 배우 최초 아카데미 후보까지
윤여정이 연기해 온 수많은 캐릭터 중에는 전형적인 인물을 찾기 어렵다.

윤여정이 최근 인터뷰에서 "필생의 목적이 무엇을 하든 다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듯, 그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자신만의 색채로 캐릭터를 소화해 왔다.

'화녀'에서는 주인집 남자를 유혹하는 가정부 역할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였고,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2003)에서는 투병 중인 남편을 두고 공개적으로 불륜을 선언하는 시어머니 역으로 그간의 공백기가 무색하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후에도 재벌 집안의 탐욕스러운 안주인(돈의 맛), 종로 일대에서 가난한 노인들을 상대하는 박카스 할머니(죽여주는 여자) 등을 연기하며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는 캐릭터를 그만의 방식으로 완성했다.

윤여정은 '바람난 가족'으로 인연을 맺은 임상수 감독과 이후 '그때 그 사람들'(2005) '오래된 정원'(2006), '하녀'(2010), '돈의 맛'(2012), '나의 절친 악당들'(2015), '헤븐:행복의 나라로'(2021)까지 크고 작은 역할들로 함께 했다.

이재용 감독과도 '여배우들'(2009)과 '죽여주는 여자'(2016)로 만났고, 홍상수 감독의 작품에도 '하하하'(2009), '다른 나라에서'(2011), '자유의 언덕'(2014),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 등 여러 편에 출연했다.

'화녀' 이후 50년…한국 배우 최초 아카데미 후보까지
윤여정은 생계를 위해 가리지 않고 연기했던 시절과 비교하며 '하고 싶은 사람과 하고 싶은 작품을 골라 하는 것이 60대 이후 자신이 누리는 사치'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해 사랑받은 독립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감독 김초희)에는 개런티를 받지 않고 출연했고, '미나리'도 "독립영화라 고생할 게 뻔해 하기 싫었다"면서도 "정이삭 감독과는 다시 한번 하고 싶다"며 애정과 신뢰를 보였다.

해를 거르지 않고 출연한 TV 드라마에서도 김수현, 노희경 등 독보적인 작가들과 호흡을 맞추며 더 빛을 발했다.

통상 나이 든 여배우들이 떠맡는 '국민 엄마' 역할보다는 시대의 흐름에 맞는 역을 창조했다.

김수현 작가와는 1980년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사랑과 야망'(1987∼1988)부터, 가부장적 가치관이 변하는 과정을 담은 '사랑의 뭐길래'(1991∼1992), '목욕탕집 남자들'(1995∼1996) 등의 작품에 함께했다.

노희경 작가와는 최초의 마니아 드라마로 꼽히는 '거짓말'(1998)과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1999), 청춘의 마음을 가진 황혼들의 이야기를 담은 '디어 마이 프렌즈'(2016)까지 인연을 이어갔다.

'화녀' 이후 50년…한국 배우 최초 아카데미 후보까지
최근에는 직설적인 화법과 유쾌한 유머 감각으로 예능도 접수했다.

나영석 PD와 '꽃보다 누나'(2013)로 인연을 맺은 이후, '윤식당'(2017∼2018)에 이어 '윤스테이'(2021)까지 70대의 나이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예능 프로그램을 이끌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자랑한다.

영화 '미나리'에 앞서 2015년 배두나가 주연한 넷플릭스의 미국 드라마 '센스8'과 현재 촬영 중인 애플TV플러스의 드라마 '파친코'까지 해외 활동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