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대 진학했다 연기자로 전향…무대가 주는 따뜻함에 이끌려"
영화 '정말 먼 곳' 강길우 "차별로 개인이 받는 압박감에 집중"
"진우가 안식을 찾을 수 있는 '정말 먼 곳'은 결국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
영화 '정말 먼 곳'에서 상처를 안고 서울을 떠나 강원도 화천의 양떼 목장에서 평안함을 찾는 '진우'를 연기한 배우 강길우(35)를 최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강길우는 영화 속 진우처럼 진중하고 차분한 분위기였다.

작품이나 캐릭터에 관한 질문에는 잠시 생각을 한 뒤 천천히 의견을 말했다.

그는 말수가 적고 점잖은 부분이 닮았다고 했다.

영화는 목장에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진우가 오랜 연인 '현민'의 방문 이후 마을 사람들에게 숨겨왔던 성 정체성이 드러나면서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되는 이야기다.

두 사람의 동성애를 이야기의 기반으로 하고 있다.

강길우는 동성애 연기에 대해 "진우가 성소수자라는 부분이 특별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인물의 성격과 사람과 사람 간의 사랑이라는 점에 더 집중했던 것 같다"며 "연기할 때 중요시 했던 부분은 차별과 주변의 시선 등으로부터 개인이 받는 압박감과 고독감이었다"고 설명했다.

영화 '정말 먼 곳' 강길우 "차별로 개인이 받는 압박감에 집중"
실제 영화는 동성애를 소재로 삼고 있지만,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이야기의 주된 흐름은 사회적 편견에 움츠러든 진우와 이를 바라보는 현민의 심리를 따라간다.

"진우는 문제를 부딪쳐서 해결하는 편이 아니라 속에 가득 담아두고 피하는 편이에요.

반면 현민은 많은 부분을 받아들여 스스로 편안해질 수 있는 상태를 선택하죠. 개인적으로 진우가 세상에 존재하는 자기 자신을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진우가 찾는 안식처는 자신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조금 가까워질 수 있다고 봐요.

"
속으로 아픔을 삭이는 성격 탓에 진우는 영화 내내 감정을 누르다가 후반부에 가서야 감정을 폭발시킨다.

트럭을 타고 가던 두 사람이 멈춰 서서 서로를 탓하는 장면에서다.

강길우는 영화 내내 이어져 온 감정을 터트려야 하는데 차마 현민에게 모진 말을 내뱉어야 하는 대사가 입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마음이 당시의 진우의 마음이었을 거라고도 전했다.

영화 '정말 먼 곳' 강길우 "차별로 개인이 받는 압박감에 집중"
강길우는 외형적으로도 진우를 표현해내기 위해 애를 썼다.

촬영 전 어울리는 머리 스타일을 찾기 위해 5∼6개월간 머리를 길렀다가 잘랐고, 체중도 10㎏ 불렸다.

산골에서 일하는 사람답게 보이기 위해 태닝을 했고, 조카를 딸처럼 돌보는 설정을 위해 스포츠센터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아이 돌보는 일을 몸에 익혔다.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고, 제가 가진 능력치를 다 보여준 영화"라며 "10여 년간 연기하면서 다양한 역할을 했는데 준비 시간이 가장 길었던 작품"이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사실 처음부터 배우를 꿈꾼 것은 아니라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배웠고, 미대에 진학까지 했지만, 군대에 다녀온 뒤 돌연 전공을 바꾸게 됐다고 했다.

다른 것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영화미술에 발을 들였는데 무대 작업을 마친 뒤 객석에서 바라본 배우들의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자신은 없었지만, 일단 해보고 아니면 빨리 접자는 마음으로 도전했다"며 "그런데 너무 재밌었다.

공연이 끝나면 또 다른 공연을 시작하고, 끝나면 또 다른 공연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영화 '정말 먼 곳' 강길우 "차별로 개인이 받는 압박감에 집중"
도대체 연기의 어떤 면이 그를 매료시켰을까.

강길우는 "무대 위의 따뜻함"이라고 답했다.

"첫 공연을 올렸던 날, 암전 속에 등장해서 조명이 켜지는 순간 따뜻했던 기억이 선명해요.

관객들이 나를 보고 있는데, 내가 웃으면 웃고, 울면 같이 울죠. 그 따뜻함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처음에는 그 따뜻함을 즐기기 위해 무대에 섰고, 그 후에는 내가 맡은 인물을 더 잘 표현하고 싶다는 욕심들이 생겼죠."
독립영화계 내에서는 '연기파' 배우로 인정받고 있지만, 여전히 연기를 잘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배우로서 표현하지 않는 용기도 중요한 것 같다.

애써 표현하는 것이 때로는 작위적일 수 있기 때문에 주로 작품에 그냥 존재하고자 애를 쓴다"고 말했다.

"직업 배우로서 오래 일하고 싶어요.

스스로, 주변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고요.

그동안 선한 캐릭터로 기억되는 역할들이 많았는데, 완전히 다른 악역을 맡아보고 싶어요.

그런 캐릭터가 나오는 범죄물, 스릴러도 좋고, 최근에는 사극에 대한 호기심도 생겼어요.

연기에 있어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영역을 확장하고 싶죠."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