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투기 자금줄' 북시흥농협 어찌하나"…난감해진 금감원 [박종서의 금융형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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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이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등의 신도시 투기 의혹과 관련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은행 대출 과정에서 불법이 없었는지 점검하겠다고 강조하면서입니다. 금감원은 꼼짝없이 검사를 나가야 할 처지입니다.
홍 부총리는 “LH 투기 사건은 은행권의 특정 지점에서 대규모 대출이 집단적으로 집중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이런 대출이 어떻게 가능했고 대출 과정상 불법 부당이나 소홀함은 없었는지, 맹점이나 보완점은 없는지 점검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금감원 등 감독기관은 그 프로세스를 철저히 조사해 달라”고 했습니다.
홍 부총리가 언급한 ‘은행권의 특정 지점’은 농협중앙회의 단위조합 가운데 하나인 경기 시흥시 북시흥농협입니다.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상당수 LH 직원들이 이곳에서 수억원씩 대출을 받았지요. 금감원이 검사를 나가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금융회사 검사가 일상인 조직이 금감원입니다. 대형 금융지주들의 사소한 잘 못까지 찾아내는 금감원인데 북시흥농협 같은 소규모 상호금융(2금융권) 조직을 검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금감원도 홍 부총리의 지시를 받아들여 철저하게 검사하고 불법 행위를 적발하고 싶을 겁니다. 지금은 LH 투기 의혹을 비호하는 그 어떤 행동도 용납될 수 없는 상황이지요. 벌써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물러나기로 결정됐습니다.
그런데 금감원은 북시흥농협 검사와 관련해 일체의 말이 없습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그 이유가 불법 대출을 적발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지에 대해 아직 해법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검사 성과가 시원치 않으면 ‘빈손 검사’ ‘허탕 검사’ ‘봐주기 검사’ ‘면죄부 검사’ 같은 비판에 직면할 수 있으니까요.
금감원의 난감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농협중앙회의 단위조합 검사 시스템을 알아야 합니다. 금감원은 북시흥농협 같은 곳을 직접 검사하지 않습니다. 북시흥농협 같은 농협중앙회의 단위조합은 전국적으로 1110개가 넘습니다.
금감원이 일일이 검사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평소에는 검사권을 농협중앙회에 맡겨 놓습니다. 금감원은 농협중앙회의 검사 프로세스와 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역할을 합니다.
농협뿐만 아니라 신협 등 상호금융업권 전체가 그렇습니다. 신협은 880여개 조합을 두고 있는데 여기도 마찬가지로 금감원이 신협중앙회에 검사 권한을 대부분 위임합니다. 일부는 직접 검사에 나서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문제가 생겼을 때 챙겨보는 식입니다.
한경의 취재 결과를 종합해보면, 금감원은 이미 농협중앙회를 통해 북시흥농협의 대출 과정을 상세하게 확인했습니다. 지금도 농협중앙회와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 받고 있지요. 다만 농협중앙회에 금감원 직원을 직접 파견한 것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농협중앙회를 통해 대출 과정을 파악한 결과는 규정상 문제를 삼기가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신도시 계획을 미리 알고 불법으로 투기를 했는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대출에 있어서는 불법 행위를 특정하지 못 할 상황이라는 겁니다. 저희 한경 기자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취재를 했습니다만 제출해야 할 서류를 내지 않았다던가, 담보인정비율(LTV)을 초과해 돈을 빌렸다던가 하는 사례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일부 서류를 내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들 서류조차 의무 사항은 아니었습니다.
농협중앙회 측도 “대출 과정에서 불법성은 없었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토지를 담보 삼아 인정 비율에 맞춰 일반대출을 받았고, 이자도 제때 내고 있어 대출금을 회수할 근거도 없다고 설명합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금감원이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린 겁니다.
물론 검찰이 수사를 한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겁니다. 금감원은 대출 과정의 적법성을 따질뿐 그 외에 유착관계라거나 공모 혐의에 대해서까지 검사를 하기 어려운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금감원에서는 지금 북시흥농협 검사와 관련해서는 함구령이 내려졌습니다. 구체적인 조사 방식을 밝힐 수 없다거나 검사와 관련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고 확인을 해주면 징계를 받는다고 하기도 하네요.
검사를 나가기는 해야겠고 검사를 나가봐도 소득이 없을 거 같으니 금감원으로서는 ‘진퇴양난’입니다. 금감원은 이번 난관을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까요.
고민은 깊겠지만 정공법 외에는 답이 없습니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죠. 규정과 절차에 따라 사심 없이 검사를 하는 것. 그 이상은 없을 것 같습니다. 정상적인 검사를 해서 불법이 발견되면 법에 따라 처리하고, 취약점이 노출됐다면 틀림없이 개선하는 수준으로 마무리를 해야겠죠.
박종서 금융부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