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집책 평소 알던 사이, 먼저 투자한 지인 소개에 가족까지 줄줄이
의심 많은 사람에게 당좌수표 주며 안심시키기도

제주에서 '외제차 수출 사기'로 단기간에 280명이 넘는 이들이 600억원에 달하는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 최대 사기 피해자 280명·피해액 600억원, 어떻게 가능했나
이번 사건은 제주지역에서 발생한 사기 사건으로는 피해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졌다.

사기단은 어떤 방식으로 이 같은 거대 사기 행각을 벌였으며, 또 피해자는 왜 속을 수밖에 없었을까?
12일 제주특별자치도경찰청과 피해자 측에 따르면 다른 지역 소재 무역회사 대표 A씨와 제주지역 모집책 4명 등은 지난해 9월부터 최근까지 280여 명의 피해자에게 캐피탈 업체로부터 60개월 할부로 대출을 받아 수입차를 사거나 리스해주면 1대당 2천만원을 지급하고 할부금도 모두 대납하겠다고 속였다.

A씨 일당은 중고차의 경우 새 차와 달리, 다른 나라에서 수입 시 관세가 면세되거나 감경된다면서 명의를 빌려주는 대신 돈을 나눠 갖자고 피해자들을 현혹했다.

중고차가 다른 나라에서 수입할 때 관세가 면제된다는 등의 말을 한 이유는 신차를 구매해 한 번도 이용하지 않고 명의만 바꿔도 중고차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이들 일당은 이러한 방식으로 서류상에만 중고차로 표기된 신차가 동남아와 중동에서 현지보다 저렴한 가격에 인기를 끌고 있다며 피해자들에게 투자를 권유했다.

이들 일당은 계약한 수입차를 인천항에서 3∼4개월 보관 후 말소 등록해 수출한다고 했다.

피해자들은 주로 모집책과 평소 알고 지낸 지인으로 동네 주민과 학교 선후배 등으로 다양했다.

이미 명의를 빌려준 이가 자신의 지인을 소개하기도 해 피해자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연결된 경우도 많았다.

이처럼 주변에 명의를 빌려주고 실제로 돈을 받았다는 지인이 많아지자 피해자들은 더 믿음을 가지게 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모집책 중 일부가 A씨와 수억원대의 차량할부대출 계약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피해자들은 더욱 이들 일당을 믿고 자신의 명의로 수입차 구매 계약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피해자들은 차량 명의가 자신의 앞으로 돼 있는 만큼, 자신의 동의 없이는 계약한 차를 함부로 처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의심이 많은 사람에게는 A씨 이름이 적힌 당좌수표를 주며 안심시키는 주도면밀함까지 보였다.

A씨 일당은 또 한 달에 한 번꼴로 피해자들을 모아 계모임 성격의 만남을 가지면서 더욱 신뢰를 쌓았다.

차량 리스 계약이나 구매 계약은 제주가 아닌 대부분 다른 지역에서 이뤄졌다.

리스차의 경우 모집책과 피해자가 함께 서울 등으로 올라가 구매 계약을 했다.

피해자 대부분이 서울 판교의 한 수입차 매장에서 주로 리스차 계약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매장은 A씨 일당을 통해 주문이 밀려들자 나중에는 차가 동이 나 출고시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 일당은 리스차를 계약할 때 한꺼번에 여러 명의 피해자를 동반해 가는 방식으로 또 한 번 피해자들을 안심시켰다.

수입차 할부 구매 시에는 주로 다른 지역 딜러가 제주로 직접 내려와 피해자들과 계약을 체결했다.

A씨 일당은 코로나19를 핑계로 피해자들에게 인감도장과 신분증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 피해자는 혼자서 5대의 외제차를 구매해 4억원에 이르는 할부금을 갚지 못해 도산할 처지에 몰린 것으로 파악됐다.

제주경찰청은 현재 각 경찰서에 제출된 고소장을 취합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dragon.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