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예는 생명을 만드는 창조적인 일이다. 하지만 항상 높은 평가를 받지는 않았다. 때로는 고상한 취미나 불필요한 사치로 여겨졌다. 반대로 저급한 육체노동으로 폄하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원에서의 창조 활동이 인간에게 안정감을 주고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울증을 치료하고 자아 존중감을 느끼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 치료사인 수 스튜어트 스미스는 《정원의 쓸모》에서 정원과 식물이 인간의 정신 건강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신경과학적·심리학적으로 밝혀낸다. 원예가 인간에게 위안을 주는 것을 넘어서 파괴되고 손상된 마음을 회복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는 정원 가꾸기로 전쟁의 트라우마를 극복한 할아버지 이야기를 실마리 삼아 식물과 사람의 관계에 관해서 탐구를 시작한다. 씨앗을 싹 틔우는 일은 새로운 생명과 애착을 형성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내가 관심을 가진 만큼 자연이 자라고, 자연의 응답에 다시 내가 응답한다. 원예는 이를 통해 자연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행위다. 안전한 정원이라는 공간은 내면 세계와 외부 세계가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이다. 현실에서 한발짝 떨어져 있지만, 계절의 변화와 생명의 주기라는 세상의 현실 한가운데 있기도 하다. 정원은 휴식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근원적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데 도움을 준다.

원예가 자존감을 높이고 우울증과 불안을 완화한다는 과학적 연구 결과가 속속 밝혀지면서 병원이나 교도소 같은 시설에서 치유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원예는 창조하는 일인 동시에 파괴하는 행위다. 가위로 가지를 치거나, 땅을 깊게 파헤치고, 잡초를 뽑아낸다. 성장을 돕는 이 같은 파괴 행위를 통해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새롭게 개조하고 생명을 불어넣는 일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정원이 우리를 생명의 기본적인 생물학 리듬으로 돌아가게 해준다”고 강조한다. 생명의 속도는 식물의 속도다. 유한한 삶 속에서 속도를 늦추고 자연의 리듬에 맞춰 나아가는 지혜가 정원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