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근 한국메세나협회장 취임…"미술시장 활성화 위해선 '물납제' 도입해야"
“미술품과 문화재로 세금을 대신하는 물납제 도입은 당연한 겁니다. 시기와 법, 기술적인 문제들만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희근 신임 한국메세나협회장(75·벽산엔지니어링 회장·사진)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미술품 상속세 물납제 도입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협회장 취임을 기념해 10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다.

김 회장은 “국공립 미술관의 미술품 구입 예산으로는 세계적인 작품을 수집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물납제를 도입하지 않을 경우) 해외 투자자들이 우리 문화자산을 구매해 문화재가 해외로 반출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화자산 보호라는 순기능도 고려하길 바란다”며 “정부가 나서서 풀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물납제는 현금 대신 현물 자산을 정부에 내고 책정된 자산가치만큼 세금 납부액을 인정받는 제도다. 현재 부동산과 유가증권에만 적용되고 있다. 지난해 이건희 삼성 회장이 타계한 뒤 그가 남긴 막대한 미술품·문화재의 해외 반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김 회장은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가치를 책정하려면 미술품 진위 여부를 가려야 하는데 정부가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 그는 “이건희 컬렉션이 2조원 규모라고 추정된다는데 누가, 어떻게 감정했는지를 두고 추후 논란이 될 수 있다”며 “국립현대미술관 등 국공립 예술기관들의 감정 역량도 충분하므로 정부가 적극 나서면 (물납을) 제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미술계의 성장을 위해서도 물납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상속세 물납제가 허용되면 명작들이 국외로 반출되지 않고 국내에 남아 미술관의 명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그는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처럼 세계 미술품 수집가들이 한국을 찾아 오게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미술관·화랑들이 성장해야 국내 신진 미술작가를 육성할 생태계가 조성된다”고 지적했다.

신임 회장으로서 그는 지역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한 ‘메세나 전국 네트워크’ 재구축, 기업들의 문화예술 접대비 지출 활성화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문화예술 후원 활성화에 관한 법률’(메세나법)의 후속 법안도 마련할 예정이다. 정부가 기업들에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해서 후원을 유도하는 게 주된 내용이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중견기업에도 메세나 노하우를 전수해 기업 규모에 상관없이 메세나 활동을 장려하겠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미술은 물론 클래식, 오페라 등 문화예술 전반에 후원을 지속해왔다. 주변 기업인들이 그를 ‘메세나(문화예술 후원) 전도사’라고 부를 정도다. 김 회장은 “코로나19로 기업 경영 환경이 힘들어졌지만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 걸맞은 문화예술 소양을 쌓는 게 절실하다”며 “새로운 문화공헌의 유형을 찾아 메세나 활동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