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막 탄성 조작, 전이암 표적 부상…미 국립과학원회보 논문 암 종양은 기저막(basement membrane)으로 싸여 있다.
암세포가 분열하고 성장할 땐 기저막이 보호 기능을 한다.
하지만 종양에서 떨어진 암세포 무리가 전이할 때 기저막은 뚫고 나가야 할 장벽이기도 하다.
미국 MIT(매사추세츠공대) 연구진이 유방암 종양의 기저막 연구에서 아주 흥미로운 특성을 발견했다.
암 종양의 기저막은 기본적으로 뻣뻣한 성질을 가졌다.
그런데 종양 기저막은 원래 크기의 두 배까지 팽창하는 탄력성을 겸비했고, 크게 팽창할수록 뻣뻣한 경직성도 따라서 높아졌다.
이는 팽창하면 탄력성이 커지는 보통의 라텍스 풍선과 전혀 다른 것이다.
연구팀은 기저막의 이런 특성이 종양의 성장 및 전이 능력을 제한할 거로 보고 있다.
이 연구 결과는 최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논문으로 실렸다.
9일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org)에 공개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이번 연구가 특히 주목받는 건 암 종양의 전이를 차단하는 새로운 치료법 개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암 사망은 대부분 암세포의 전이에서 비롯된다.
암의 전이란 특정 부위의 원발암에서 한 무리의 암세포가 떨어져 나와 혈액으로 타고 다른 부위로 옮겨가는 걸 말한다.
암세포가 포도송이처럼 뭉친 이 전이성 암세포 무리, 일명 '순환 종양 세포 클러스터'(CTCs)는 전이암의 씨앗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기저막은 암 종양뿐 아니라 건강한 조직과 기관도 감싸서 보호한다.
초박형(超薄型) 필름과 유사한 막이지만, 인체 내 조직과 기관이 서로 분리된 채 자기 위치에서 기하학적 형태를 유지하게 돕는다.
MIT 연구팀은 CTCs가 다른 부위로 이동하면서 주변 환경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파고들었다.
처음엔 막의 표면 관찰에 미세 탐침(probe)을 이용하는 원자간력 현미경(ATM)을 썼다.
이 기기를 쓰면 막 표면을 변형시키는 데 필요한 압력의 크기를 보고 물질의 내성과 탄력성을 측정할 수 있을 거로 예상했다.
하지만 종양 기저막은 너무 얇고 기본 조직과 분리하기도 까다로워 ATM 측정치만 보고 막의 성질을 알아내기 어려웠다.
그래서 풍선 불기처럼 기저막에 압력을 가해 기본 조직에서 분리하는 방법을 썼다.
실험 모델론 인간의 유방암 세포를 선정했다.
유방암 세포는 단백질을 분비해, 종양 회전체(tumor spheroids)라는 암세포 무리를 막으로 둘러쌌다.
연구팀은 크기가 서로 다른 종양 회전체를 몇 개 배양한 뒤 유리 현미침(顯微針)으로 수액을 주입했다.
이렇게 압력이 가해진 종양 기저막은 암세포에서 떨어져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과학자들은 기저막이 더 팽창하지 못하는 상태에 도달할 때까지 안정적으로 다양한 수위의 압력을 가하는 실험을 반복했다.
어찌 보면 간단한 이 실험에서 기저막의 숨겨진 비밀이 풀렸다.
압력을 받은 기저막은 원래보다 훨씬 더 크게 팽창했지만, 압력을 풀면 다시 서서히 축소했다.
여기까지는 고무풍선 등 탄력성 물질의 전형적인 반응과 같았다.
그런데 실험을 거듭하자 고무풍선과 전혀 다른 종양 기저막 특유의 성질이 드러났다.
뜻밖에도 종양 기저막은 팽창하면서 더 뻣뻣하게 변했다.
기저막의 이런 비선형 탄성(non linearly elasticity)은 변형할 때 경직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시사한다.
이와 반대로 라텍스 재질의 풍선은 선형 탄성을 가졌다.
팽창하거나 변형할 때도 원래의 탄성이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예컨대 라텍스 풍선에 공기를 주입할 땐 반지름이 38% 커지는 시점까지 약간 강한 압력을 가해야 한다.
하지만 이 지점을 지나면 약하게 일정한 압력만 가해도 풍선은 계속 팽창한다.
논문의 제1 저자를 맡은 궈 밍(Ming Guo) 기계공학 부교수는 "이런 현상을 스냅-스루 불안정성(snap-through instability)이라고 하는데 다행히 종양 기저막에선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라면서 "이는 종양 기저막이 암세포의 성장을 제어할 수 있다는 걸 시사한다"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앞으로 암의 발달 단계별로 종양 기저막 특성이 어떻게 다른지 규명하고, 기저막 탄성을 조작하는 방법이 있는지도 탐구할 계획이다.
기저막의 경직도를 올려 종양에서 전이성 암세포가 떨어져나오는 걸 막을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궈 교수는 "우리가 계획하고 있는 테스트는, 더 뻣뻣한 재질의 (늘어나는) 풍선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라면서 "새로운 약물로 기저막의 경직성을 높여 암세포의 종양 이탈을 차단하는 방법도 구상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