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공포 엄습
전문가들 "과민반응…올해 물가 연 2% 넘기 어려워"
기대인플레이션은 고공행진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인플레이션 부를 것"
중앙은행 향후 행보가 환율·금리 흐름 가른다
치솟는 기대물가에 달러가치 고공행진
9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7원50전 오른(원화 가치는 하락) 1140원70전에 거래 중이다. 이날 환율은 8원30전 오른 1141원50전에 출발했다. 이대로 마감하면 지난해 10월19일(1142원) 후 처음으로 1140원대에 마감하게 된다. 국고채(국채) 금리도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전날 10년물 국채 금리는 0.036%포인트 오른 연 2.028%에 장을 마쳤다. 연 2% 선을 웃돈 것은 2019년 3월 7일(2.005%) 이후 2년 만이다. 3년 만기 국채 금리도 0.073%포인트 오른 연 1.139%에 장을 마쳤다. 지난해 3월 23일(1.153%) 이후 1년 만에 최고치다. 국채 금리는 오전장에도 오름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달러가치 치솟고 시장금리 오르는 것은 인플레이션 기대가 커진 영향이다. 인플레이션 기대가 커지면 물가를 고려한 채권의 실질 이자수익은 줄어들게 된다. 그만큼 채권 가격이 내려가 채권 금리는 오른다. 동시에 인플레이션 기대로 통화정책이 긴축적으로 선회할 수 있다는 우려도 시장금리를 밀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지난 8일 연 1.591%로 전날(1.599%)보다 0.008%포인트 하락했다. 하지만 전날 금리(1.599%)는 지난해 2월 13일(연 1.619%) 후 최고치였다. 장중에는 연 1.6%대를 넘어서기도 했다. 미국 금리가 오름세를 타면서 한국 금리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 통상 한국 국채 등락 흐름은 미 국채와 비슷하게 움직인다. 미 국채 금리가 오르면 외국인은 한국 국채를 팔고 미 국채를 더 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수급여건이 나빠지면서 한국 국채 금리도 뛰게 된다.
자산시장을 뒤흔드는 인플레이션 공포가 부각된 배경은 크게 3가지다. 미국 등 주요국 경기 개선으로 수요측 압력 커지고 있다. 미 바이든 행정부가 1조9000억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책 추진과 백신 보급으로 미국인들의 씀씀이가 회복되면서 물건값이 다시 오름세를 보일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미국 등 중앙은행이 시중에 풀린 자금이 불어난 영향도 있다. 미국·유로존·일본·한국 중앙은행의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이들 나라의 통화량(M2)은 지난해에만 7350조원가량 늘었다. 공급 충격도 인플레이션 우려를 키웠다. 지난해 코로나19로 공장 가동이 중단되거나 설비투자가 줄면서 일부 제품의 공급이 차질을 빚고 있다. 반도체가 품귀현상을 빚는 것이 대표적이다. 공급량은 부족한데, 경기회복과 부양책으로 사람들의 지갑은 두꺼워지는 상황에서 물건 값은 튈수 밖에 없다.
인플레이션 심리 퍼지면…금리환율 고공행진 이어진다
적잖은 전문가들은 인플레이션 우려가 과도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의 소비자물가 인상률이 중앙은행 목표치(2%)를 연간 기준으로 넘어서지 못할 것이고 일시적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도 "인플레이션 우려가 나온는 것은 돈이 많이 풀린 데다 원자재 가격과 자산가격 상승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며 "올 연간 소비자물가 2%를 넘어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하지만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치는 기대 인플레이션 우려가 높다. 미국 기대 인플레이션율(BEI)은 지난 8일 장중에 2.26%까지 치솟았다. 2014년 7월 이후 최고치 수준이다. 이처럼 "물가가 치솟을 것"이라는 소비자들의 기대심리가 퍼진다면 실제로 인플레이션 양상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최서영 삼성선물 연구원은 "기대 인플레이션이 적정 수준에서 유지된다면 강하게 튀었던 물가는 원래의 추세선으로 돌아올 것"이라면서도 "물가의 고공행진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확산되면 실제 물가도 원래의 추세선으로 하향 안정되기 어려운 상황이 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중앙은행(Fed)도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데 적극적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제롬 파월 Fed 의장도 지난 4일에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으로 인내할 만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Fed와 한은은 기대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한 메시지를 시장에 지속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인플레이션 우려를 꺾으려 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기준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들 수 없는 상황인 만큼 메시지 전달 등이 사장 강력한 정책 수단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장과 가계가 이 같은 중앙은행의 메시지를 얼마나 신뢰하고 믿을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이 신뢰와 믿음이 훼손될수록 기대 인플레이션이 상승하고 그만큼 환율·금리 상승세는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시장이 파월 의장과 이주열 한은 총재의 입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