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떠난 뒤 버려진 채 방치…야생동물 들락·빈집털이도
곳곳에 방사성 폐기물 임시 보관…노후시설물 철거 쓰레기 산더미
[르포] 원전사고 10년…시간이 멈춘 후쿠시마 '귀환곤란구역'
유리창이 깨진 주택, 펑크난 채 부식되는 차량, 색깔이 바랜 음료수가 든 자판기, 무성한 잡초….
전 세계를 경악시킨 원전 사고 발생 10년을 앞둔 일본 후쿠시마(福島)현의 귀환곤란(歸還困難)구역에서 3일 기자의 눈에 들어온 풍경이다.

연합뉴스는 당국의 허가를 받아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약 6∼7㎞ 거리에 있는 도미오카마치(富岡町)의 귀환곤란구역 안으로 들어가 현장을 살펴봤다.

귀환곤란구역은 방사선 피폭량이 연간 50 밀리시버트(m㏜)를 넘는 구역으로 규정된다.

거주가 불가능한 것은 물론이며 허가가 없으면 출입조차 할 수 없다.

후쿠시마 원전 부지 내부를 제외하면 당시 사고로 인한 방사성 물질 오염이 가장 심각한 지역이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르포] 원전사고 10년…시간이 멈춘 후쿠시마 '귀환곤란구역'
귀환곤란구역은 낡은 영화 세트장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곳곳에 설치된 방사선량계가 사고 원전 인근 지역임을 상기시켜줬다.

장소에 따라 차이가 있었으나 이날 기자가 방문한 곳 중 방사선량이 높은 곳은 시간당 1.5마이크로시버트(μ㏜) 안팎이라고 당국이 설치한 선량계에 표시됐다.

전날 지나갔던 간선도로의 한 지점에서는 시간당 선량이 2.1마이크로시버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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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마이크로시버트는 1밀리시버트의 1천분의 1이다.

시간당 2.1마이크로시버트를 연간 피폭량으로 환산하면 1만8천369마이크로시버트, 즉 18.369밀리시버트 수준이다.

한국에서 일반인에게 허용하는 기준을 훨씬 초과하고 원전 노동자 등 방사선 작업종사자에게 허용하는 안전기준 한도에 근접하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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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일 년 동안 같은 자리에 체류할 경우를 가정한 것이다.

실제 체류 시간은 극히 짧았기 때문에 선량계가 정확했다면 피폭량이 안전 기준 한도에 달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국의 원자력안전법 및 시행령은 방사선 작업 종사자의 연간 피폭선량 한도를 평균 20밀리시버트(연간 50밀리시버트 이내, 5년간 100밀리시버트까지)로 규정하고 있다.

일반인의 한도는 연간 1밀리시버트다.

다만 그린피스 등 환경단체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후쿠시마에는 기자가 방문했던 장소보다 방사선량이 훨씬 높은 지역이 다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귀환곤란구역은 방치된 '유령 마을' 같았다.

[르포] 원전사고 10년…시간이 멈춘 후쿠시마 '귀환곤란구역'
차를 타고 3시간 가까이 귀환곤란구역을 돌아봤지만 통제 구역 입구에서 출입 허가를 받았는지 점검하거나 각종 철거 작업을 담당하는 인력 외에 일반인을 목격하기는 어려웠다.

10년이 지나도 원전 사고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오염제거 작업으로 수거한 토양이나 풀 등이 커다란 검은 자루에 담긴 채 과거에 농지로 사용되던 땅에 쌓여 있었다.

방사성 물질이 뒤섞인 거대한 인공 제방, 혹은 언덕처럼 보이는 시꺼먼 자루 더미들이 버려진 땅의 암울한 현실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버려진 각종 시설물을 철거하면서 나온 금속 쓰레기나 플라스틱과 금속이 섞인 폐기물을 임시 보관하는 시설은 후쿠시마 부흥이 과연 가능한지 의문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녹슬고 찌그러진 금속판, 교실을 해체하면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음표 그림이 붙은 출입문, 압축가스를 담았던 것으로 보이는 상처투성이 금속 용기, 폐자전거 무더기, 책상, 농기구 부품, 타이어, 각종 매트리스 등 인간의 생활 흔적이 '특정폐기물'이라는 명찰을 달고 끝없이 쌓여 있었다.

[르포] 원전사고 10년…시간이 멈춘 후쿠시마 '귀환곤란구역'
주민이 떠난 집들은 허물어지고 훼손돼 있었다.

빈집 마당이나 공터는 어김없이 잡초가 차지했다.

주인이 떠난 자리에 야생 동물이 드나들고 쥐가 들끓거나 태풍과 여진이 할퀴면서 건물의 노후화를 가속하고 있었다.

통상 일 년에 한 번 종이를 교체하는 장지문들은 '폐가 체험'에 등장하는 집처럼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

어떤 집에는 유리창에 푸른색 방수 시트가 붙어 있었는데 빈집털이를 당한 것이라고 마을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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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민을 두 번 울리는 못된 짓에 항의하기라도 하듯 '빈집털이를 그만두라'는 임시 간판을 설치한 집도 있었다.

오염 물질을 제거하거나 각종 시설물 해체 작업을 하는 노동자 등 당국의 허가를 받아 귀환곤란구역에 출입하는 여러 부류 사람들이 있는데 이 가운데 일부가 쓸만한 물건을 가져가는 등 잿밥을 탐낸 것으로 추정된다.

주민들이 돌아와 거주할 수 있도록 피난지시를 해제한 곳도 지역 사회의 기능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했다.

도미오카마치의 경우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약 6년이 지난 2017년 4월 1일 관내 거주제한을 대부분 해제했고 현재는 후쿠시마 원전에 가까운 구역만 귀환곤란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4년 가까이 주민 복귀를 추진했으나 실제 거주자는 원전사고 전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다.

[르포] 원전사고 10년…시간이 멈춘 후쿠시마 '귀환곤란구역'
원전사고 직전인 2011년 3월 말에는 인구는 약 1만6천명이었는데, 지난달 말 기준 인구는 1만2천여명이다.

주민등록인구의 대부분이 타지역에서 피난 생활을 하고 있고 현재 거주 신고를 하고 도미오카마치에 사는 이들은 약 1천600명 선이다.

각종 시설물 철거 작업자 등 거주 신고를 하지 않고 사는 이들을 포함하면 약 2천명 정도일 것으로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사고 전의 10% 남짓인 셈이다.

귀환곤란구역 밖이지만 인접한 지역도 황량하기는 마찬가지였고 주민들이 원전 사고의 충격에서 벗어나 평온한 생활을 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자동차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에서 도미오카의 일터로 통근하는 한 직장인은 "일 때문에 가장이 혼자서 도미오카에서 지내고 가족은 타지역에 거주하는 사례도 꽤 있다"고 귀띔했다.

(취재보조: 무라타 사키코 통신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