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3대째 경기단체장…'명품 하키' 향한 5단계 발전 계획
초등부 신설 등 저변 확대·남북 교류와 경기력 향상 다짐
이상현 대한하키협회장 "윤리에 기반하지 않으면 생존 불가능"
"제가 회장 되고 제일 먼저 한 일이 협회 사무실에 조명을 더 단 것입니다.

좀 더 환하게 하려고요.

"
올해 1월 제30대 대한하키협회장에 취임한 이상현(44) 주식회사 태인 대표가 말했다.

5일 서울 송파구 협회 사무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 앞서 이상현 회장은 가벼운 인사말로 '조명을 더 달았다'고 소개한 것이지만 국내 하키인들은 이상현 회장의 취임으로 한국 하키계의 앞날도 이렇게 더 밝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 하키는 올해 도쿄올림픽 본선에 남녀 모두 출전하지 못했고,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남녀 모두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이상현 회장은 "경기력이나 협회 재정 등으로 보면 역대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 시인하며 "어떻게 보면 더 내려갈 데가 없다고 볼 수도 있지만 만일 여기서 더 내려간다면 대한민국 하키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했다.

이상현 회장은 사상 최초로 '3대'를 이어 대한체육회 산하 경기단체장을 맡은 인물로 많은 화제가 됐다.

외할아버지인 고(故)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이 대한역도연맹회장을 지냈고, 아버지인 이인정 아시아산악연맹회장 역시 대한산악연맹회장을 역임했다.

이상현 대한하키협회장 "윤리에 기반하지 않으면 생존 불가능"
이상현 회장은 "취임 전에 피상적으로 생각했던 것보다 두 달 지나고 보니 정말 의미가 있고, 큰일을 맡았다고 실감하고 있다"며 "과거처럼 성적만 추구하는 조직이 아니라 우리 하키협회의 목표는 '사회적 가치 창출'을 하는 것"이라고 협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이 회장은 "하키가 현실적으로 일반 사람들에게 비인기 종목이고, 힘든 스포츠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명품 스포츠'로 만들어가고 싶다"며 그 과정을 단계별 목표로 설정한 '5단계 계획'을 소개했다.

그는 "가장 먼저 기본이 되어야 할 부분은 하키인들 단합이 우선돼야 한다"며 "단합해서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고, 그다음은 깨끗하고 공정한 하키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후 "이렇게 만들어진 하키인들의 단합과 신뢰를 바탕으로 국민 여러분께 다가서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며 이후 재정 확충과 스폰서십의 확대를 통해 최종 목표인 경기력 향상 등 좋은 성과를 추구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5단계 중 취임 초기 이 회장이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단계는 2단계에 해당하는 '깨끗하고 공정한 하키 생태계 만들기'다.

이 회장은 "우리 경기 단체들이 스포츠 윤리 기반 위에서 활동하지 않으면 국민 여러분께 사랑받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고, 생존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며 "폭력, 금품 수수와 같은 문제를 없애는 것부터 공정한 심판과 선발 과정 등도 담보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취임 직후 스포츠윤리 담당 부회장직을 신설했고, 첫 이사회부터 모든 임원을 대상으로 윤리 관련 서약 및 교육을 받도록 했다.

그는 "우리 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도 전원을 비 하키인으로 구성, 혹시 모를 인맥 등 관계에 의한 불공정 가능성을 최소화했다"며 "곧 이와 관련한 캠페인도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각종 부조리한 일들을 회장에게 직접 신고하도록 '회장 직통 이메일' 주소를 공개했고, 최근에도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과 함께 국내 하키의 폭력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이상현 대한하키협회장 "윤리에 기반하지 않으면 생존 불가능"
그가 대표이사를 맡은 태인은 30년째 스포츠 장학 제도를 운용하고 있기도 하다.

이 회장은 "사실 이 회사가 중소 제조기업인데 설립 초기부터 스포츠를 통한 사회 환원을 해왔다"며 "장미란, 임오경, 이은경, 황영조 선수 등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장학생 선발에 참여해 작지만 알찬 장학 사업을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의 명함에는 대한하키협회장을 제외하고도 직함이 8개나 적혀 있을 정도로 그는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남북체육교류위원회 위원이자 북한 우표 수집 전문가이기도 한 그는 남북 체육 교류에도 의지를 내비쳤다.

이 회장은 "스포츠만큼 남북이 터놓고 화합하기 좋은 무대가 없다"며 "정치나 군사적인 긴장 관계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문화, 스포츠를 통한 지속적인 교류와 소통은 필요하고 그 매개 역할을 하키가 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실제로 여자하키는 올해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남북이 단일팀을 만들기로 합의했던 4개 종목(여자하키·여자농구·유도·조정) 중 하나였다.

이 회장은 "큰 대회에서 인위적 단일팀을 만들기보다 평소에 서로 왕래하며 훈련하고, 작은 대회부터 단일팀을 구성한다면 자연스럽게 더 큰 대회에서도 함께 뛸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상현 대한하키협회장 "윤리에 기반하지 않으면 생존 불가능"
그는 하키 저변 확대의 방안으로 초등부 신설과 5인제 하키의 활성화를 들었다.

이 회장은 "지금 하키는 초등부 팀이 없다"며 "이는 저변 확대나 국제 경쟁력에도 영향을 주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하키 초등부 팀이 없기 때문에 선수들이 빨라야 중학생 때 하키를 시작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어린 학생들이 하키를 하기 쉽도록 5인제 하키도 활성화할 필요가 있으며 이런 초등부와 5인제 하키가 저변 확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5일 한국 하키 발전을 위한 미래전략위원회도 출범시키는 등 의욕적인 행보를 이어간 이 회장은 "더 내려갈 곳이 없다는 심정으로 하키인부터 필사적인 각오로 스스로 바뀌어야 미래를 꿈꿀 수 있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저부터 하키 스틱을 들고 나가서 하키 알리기에 힘을 보태겠다"고 다짐했다.

사랑의 열매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인 이 회장은 지난해 '대한민국 기부 가이드북'이라는 사실상 '국내 1호' 기부 지침서를 펴내기도 했다.

'기부왕'인 그가 한국 하키를 위해서는 또 어떤 '능력 기부'로 올림픽 은메달 3개를 획득했던 한국 하키의 '옛 영광'을 되살릴 것인지 국내 스포츠계의 기대감이 크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