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필증서에 의한 유언, 모두 손으로 써야
A씨는 자필로 유언장을 작성했지만, 금융재산목록과 부동산목록은 컴퓨터로 작성했다. 그리고 유언장의 각 페이지 사이에는 인장(印章)과 무인(도장 대신하여 손가락에 인주를 묻혀 지문을 찍는 것)으로 서류의 종잇장 사이에 걸쳐서 간인(間印)을 했다. 이런 유언장은 유효할까?
서울고등법원은 유언장 전체를 자필로 작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효라고 판단했다(서울고등법원 2020. 12. 10. 선고 2020나2021150 판결). 민법에서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은 전문과 연월일, 주소, 성명을 모두 자서(自書)하도록 요구하고 있다(제1066조). 재판부는 유언장의 중요부분인 재산목록을 자필로 작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효라고 본 것이다.
민법이 유언의 방식을 엄격하게 규정한 것은 유언자의 진의를 명확히 하고 그로 인한 법적 분쟁과 혼란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므로, 법정된 요건과 방식에 어긋난 유언은 그것이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에 합치하더라도 무효(대법원 2009. 5. 14. 선고 2009다9768 판결)라는 대법원의 판계에 따른 것이다.
민법이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에서 전문 등의 자서를 요구하는 취지는, 유언자로 하여금 의사의 독립성과 의사표시의 진정성을 증명하도록 하는 데에 있다. 따라서 컴퓨터 등을 이용해 작성된 유언은 위 규정에서 정한 자필증서가 아니어서 효력이 없다.
다만 컴퓨터 등을 이용해 작성된 부분이 부수적인 부분에 그치고, 그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유언의 목적물이 특정되고 유언장이 그 자체로 완결됐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는 ‘일부무효의 법리’에 따라 유효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민법 제137조).
그러나 A씨의 유언장은 컴퓨터로 작성된 재산목록을 제외해 버리면 유증의 목적물이 전혀 특정되지 않아 유언장이 완결됐다고 볼 수 없다. 어떤 재산을 유증할 것인지는 유언에 있어서 가장 필수적이고 핵심적인 부분이다. 따라서 이 부분을 자서하지 않은 경우, 그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만 유효하다고 볼 수도 없다.
김상훈 <법무법인 가온 대표변호사(법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