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그룹이 자사 액화천연가스(LNG)선 건조 기술을 국내 중형 조선사에 이전한다. 세계 1, 2위 조선사인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M&A) 심사를 진행하고 있는 유럽연합(EU)이 LNG선의 시장 독점 가능성을 해소하라고 주문한 데 따른 조치다.

4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그룹은 최근 STX조선해양, 한진중공업 등 국내 중형 조선사에 LNG선 건조 기술을 이전하는 방안을 골자로 한 ‘LNG선 시장 독점 해소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 심사를 하고 있는 EU집행위원회에 제출하기 위해서다. EU집행위는 지난해 현대중공업에 보낸 합병 검토의견서에서 “LNG선 시장경쟁 제한 가능성을 해소할 방법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LNG선 독점 우려가 해소되지 않으면 합병을 승인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LNG선 건조에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약 70%에 달한다. 수익성이 높지만 고도의 건조 기술력이 필요해 국내 조선업계가 독보적인 경쟁력을 가진 시장이다. 최근 중국 회사가 건조한 LNG선에서 각종 기술 결함이 발생해 한국 조선사가 제작한 LNG선의 몸값이 올라가고 있다.

2019년 합병을 발표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한국을 비롯해 EU, 일본, 중국, 카자흐스탄, 싱가포르 등 6개국의 기업결합 심사를 받고 있다. 중국과 싱가포르, 카자흐스탄 등이 합병을 승인한 가운데 한국과 EU, 일본에선 심사가 진행 중이다. 남은 3개국 중에서는 LNG선의 주요 수요처인 대형 선주사가 많은 EU에 합병 성사 여부가 달렸다는 평가다.

EU는 초대형 조선사의 탄생에 따른 시장 과점으로 LNG선 가격 협상력이 떨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중공업그룹은 합병의 분수령이 될 EU와의 협상에 힘을 쏟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현대중공업그룹과 EU 간 물밑 협상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일본과 한국의 경쟁당국도 EU집행위 결정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도 코로나19로 인한 업황 변화 등으로 결합심사가 당초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LNG선 건조 기술 이전이 본격화되면 중형 조선사들의 관련 기술력이 크게 올라가 수익성 개선에 도움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LNG선 건조 경험이 있는 STX조선해양이 가장 큰 수혜를 볼 것이라는 게 업계 평가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