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마주하는 것보다 잊혀지는 게 더 아픈 '비극의 역사'
“지금 누가 아르메니아인을 기억하는가.” 아돌프 히틀러는 1933년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를 독려하며 이렇게 말했다. 오스만 제국은 1915~1917년 100만 명 넘는 아르메니아인을 학살한 뒤 이를 은폐했고, 당시 이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홀로코스트도 시간이 지나면 잊힐 테니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는 뜻이었다.

비극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다. 피해자 세대가 세상을 떠나면서 망각의 속도는 더 빨라진다. 홀로코스트 생존자 부부의 딸 엘리자베스 로즈너는 이런 위기감에서 《생존자 카페》를 썼다.

책의 제목인 생존자 카페는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만나 자신의 기억을 나누는 공간이다. 저자는 홀로코스트 피해자를 비롯해 베트남 전쟁, 르완다 대학살,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미국에서 격리된 일본계 미국인과 그 후손들의 경험담을 듣고 이를 기록했다. 이들은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에 괴로워하면서도 나름의 방식으로 이를 극복하고 있었다. 유대인 학살을 피해 살아남은 폴린은 ‘여덟 명의 어머니’를 기억한다. 생모와 자신을 숨겨준 일곱 명의 여성들의 인간애를 기리는 것이다.

카페에는 직접적인 피해 세대뿐 아니라 생존자들의 2세와 3세도 함께 자리한다. 부모 세대가 겪은 트라우마를 물려받은 사람들이다. 이들 역시 대학살에 관련된 예술 작품을 만들고, 조부모의 유대인 수용소 일련번호를 문신으로 새기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상처를 치유한다.

저자는 끊임없는 대화와 기록을 통해 역사적 비극을 기억하고 애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증오와 복수를 위해서가 아니다. 상처를 치유하고 학살이 반복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자면 가해자를 악마화하는 방식을 통해 학살을 ‘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가해자들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악랄한 일을 저지른 경우가 많고, 피해자들도 언제든 가해자가 될 수 있던 상황을 그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비극적인 사건들을 이용해 정치적인 영향력을 얻고 이익을 챙기려는 일부 세력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