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은 불멸의 작곡가로, 쇼팽은 위대한 피아니스트로 칭송받는다. 세상을 떠난 거장들을 지금 여기의 사람들과 이어주는 건 단 하나, 그들이 남긴 악보다. 이를 읽어내고 해석하는 건 피아니스트들에겐 평생 숙제로 남는다. 작곡가의 의도를 살려야 해서다.

반기를 든 연주자도 있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프란츠 리스트(1811~1886)는 악보에 적힌 지시문을 무시하고 자기 방식대로 연주했다. 작곡가 권위에 반한 것이다. 개성을 좇은 리스트는 비르투오소(거장)로 성장했다.
[혼자보긴 아까워] 러시아 피아니즘의 거장 플레트네프가 선보이는 쇼팽의 선율
피아니스트 미하일 플레트네프(64·사진)도 같은 과다. 그는 2000년에 진행된 인터뷰에서 리스트를 사례로 들며 "모든 게 틀렸던 셈이다"라고 언급한다. 무조건 작곡가 의도를 따르려던 것이 꼭 맞는 얘기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플레트네프도 피아노 앞에선 자신만의 색채를 선보였다. 허명현 음악평론가는 "플레트네프는 청년시절 건반을 누를 때 날카로우면서도 비르투오소(거장)의 면모를 보여줬다. 그의 주법은 새로운 예술로 승화됐다"고 평가했다.

최근 그가 해석한 쇼팽의 레퍼토리를 감상할 수 있는 무대가 열렸다. 지난달 15일 이탈리아 페트루짤리 공연장에서 열린 독주회다. 플레트네프는 공연에서 프레드릭 쇼팽의 '폴로네이즈 1번 올림 C단조'를 시작으로 '환상곡 f단조', '뱃노래', '녹턴' 등을 들려줬다.
[혼자보긴 아까워] 러시아 피아니즘의 거장 플레트네프가 선보이는 쇼팽의 선율
플레트네프는 러시아 피아니즘 정수를 물려받은 연주자로 유명하다. 1977년 전 소련 피아노 콩쿠르에서 1위에 오르더니 다음해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 트로피를 거머줬다. 그의 연주에 전 세계인이 감화됐다. 미국·영국 등 러시아의 적대국에서도 음악회를 열었다.

독주회에서도 신기에 가까운 연주를 선보였다. 건반을 짚는 손은 섬세했고 울림은 컸다. 명료하면서도 부드러운 음색이 약 80분동안 이어졌다. 허 평론가는 "플레트네프는 폴로네이즈를 칠 때 성부를 엇갈려서 연주한다"며 "덕분에 피아노의 중저음을 강조하지 않아도 울림은 크고 짙었다"고 말했다.

감상법은 간단하다. 페트루짤리 재단(Fondazine Petruzzelli) 유튜브 채널에 접속하거나, 검색창에 'Recital pianistico Michail Pletnev를 치면 감상할 수 있다. 플레트네프는 올해 12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내한 공연을 열 계획이다. 공연에 앞서 그의 진가를 엿볼 수 있는 무대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