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회사 크래프톤은 매월 ‘크래프톤 라이브 토크’를 연다. 온·오프라인 사내 소통 프로그램이다. 장병규 크래프톤 이사회 의장, 김창한 대표 등이 회사 현안을 설명하는 자리다. 25일에는 김 대표가 마이크를 잡았다. 김 대표는 “개발직군 연봉을 일괄 2000만원 인상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날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서비스인 블라인드의 게임라운지(게임사 직장인이 모두 볼 수 있는 게시판)도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와우!’ ‘파격적이다’ ‘부럽다’ ‘우리 회사는 뭐 하나’ 등의 글이 쏟아졌다. 크래프톤, 사상 초유의 연봉 인상‘배틀그라운드’로 유명한 크래프톤의 파격 연봉 인상으로 정보기술(IT)업계는 물론 경제, 산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최근 게임업계에서 잇달아 발표된 800만~1000만원 수준의 인상폭과 격차가 큰 데다 경쟁업체들을 자극할 ‘혁명적’ 수준이란 점에서 산업계를 강타할 ‘거대한 트렌드’로도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크래프톤은 이날 올해 개발직군(엔지니어), 비(非)개발직군의 연봉을 일괄적으로 각각 2000만원, 1500만원 올린다고 발표했다. 신입 초봉은 개발자 6000만원, 비개발자 5000만원으로 책정됐다. 게임업계뿐 아니라 국내 주요 대기업군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직원 500명 이상 대기업 대졸 신입 사무직 근로자 평균 연봉은 3347만원이었다. 삼성전자 신입 초봉은 4676만원 정도다. 블라인드에서 똘똘 뭉친 MZ세대유력 IT 기업들의 파격 복지 발표는 도미노처럼 번지고 있다. 앞서 넥슨과 넷마블, 컴투스, 게임빌은 전 직원의 연봉을 800만원씩 인상했다. 2019년부터 전 직원에게 1000만원 상당의 스톡옵션을 매년 지급해온 네이버도 지난 24일 스톡옵션 지급을 결정했다. 카카오는 8일 창사 이후 처음으로 전 직원에게 자사주 10주씩을 상여금으로 제공한다고 발표했다.표면적으로는 사상 최대 실적의 내부 공유가 파격 인상의 배경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촉발한 게임, 인터넷 등 비대면 산업군의 호실적이 경영진의 공격적 결단을 쉽게 해주고 있다는 얘기다. 비상장사인 크래프톤은 지난해 매출 2조원을 올려 약 1조원의 영업이익을 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재 이탈을 선제적으로 방지하자는 계산도 함축돼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최근 인터넷업계 호황으로 ‘개발자 쇼티지(품귀 현상)’가 나타나면서 IT 기업들이 앞다퉈 개발자 처우 개선에 나서고 있다”며 “실탄이 넉넉한 곳에서부터 순차적으로 인상 도미노가 시작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업계에서는 이런 움직임을 ‘MZ세대(밀레니얼 세대+1995년 이후 태어난 Z세대)’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많다. 투쟁에 의존했던 이전 세대보다 성과에 대한 합리적 보상에 민감한 직원들을 관리하는 고육지책이라는 얘기다. 김용희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는 “MZ세대는 개인의 노력에 따른 즉각적인 보상을 원한다”고 분석했다.SNS를 통해 임금, 회사 복지 등과 관련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MZ세대의 특성도 한몫하고 있다. 인터넷업계 관계자는 “회사 소식이 익명 직장인 커뮤니티 서비스인 블라인드와 카카오톡을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퍼진다”며 “소리 없이 익명으로 증폭되는 움직임이 경영진에게는 파업만큼이나 강력한 압력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신(新)소통경영’의 IT 수장들경영진의 소통방식도 이전 세대에선 보기 드문 ‘개방형’으로 급속히 전환하고 있다. 회사 창업자와 대표가 직접 직원과 소통하는 풍경은 IT업계에선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은둔의 경영자쯤으로 인식되던 창업자들도 눈높이 소통이 자연스럽다. 엔씨소프트 오너인 김택진 대표도 그중 한 명. 김 대표는 ‘I&M’이라는 사내 방송을 통해 회사 소식을 정기적으로 전한다. 실시간 익명으로 질문도 받는다.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와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이사회 의장도 이날 직원 앞에 섰다. 최근 불거진 성과급 지급 기준과 인사평가 논란 등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김 의장은 “소통을 통해 조금 더 나은 문화로 나아갈 수 있다면 오늘의 이 자리가 굉장히 의미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 GIO는 “올해 진심으로 가장 기쁜 일 중 하나는 직원들이 만든 성과와 그 가치를 처음으로 스톡옵션을 통해 주주뿐 아니라 직원과 함께 나누게 된 점”이라고 말했다.김주완/구민기 기자 kjwan@hankyung.com
최근 사내 인사평가 적절성 문제가 불거진 카카오가 오는 3월2일 별도의 간담회를 개최하고 개선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25일 카카오의 창업자 김범수 이사회 의장의 재산 기부 관련 사내 직원 간담회 '브라이언톡 애프터'에서는 인사평가와 관련한 논의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이날 카카오는 오후 2시부터 2시간가량 본사와 계열사 6000여명을 대상으로 비공개 사내 간담회를 개최했다.간담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10명의 직원만 현장에 참여하고 50명은 원격으로, 나머지 직원들은 카카오TV 라이브 방송을 통해 시청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카카오의 새로운 도전, 미래와 방향성 △크루와 함께 사회문제 해결방안 찾기 △ 오픈 Q&A 순으로 진행된 간담회에 약 2400여명의 직원들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이날 간담회에서는 정해진 주제 외에도 직원들의 보상 문제 및 인사 평가 관련 질의도 나왔지만, 비중 있게 다뤄지지 못했다. 일부 카카오 직원은 "크루들의 불만에 대해 다루는 시간이 부족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회사 관계자는 "다음달 2일 오픈톡 간담회를 통해 인사평가를 포함한 다양한 논의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다만 김범수 의장은 간담회 실시간 채팅창에서 인사 관련 질의가 나오자 "적어도 카카오 공동체 내에서는 절대로, 누구를 무시하고 해를 끼치거나 멸시하는 행위는 없어야 한다"며 "혹시 이에 대해 민감하지 않은 리더가 있다면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김 의장은 "직장 내에서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거나, 해를 끼칠 의도는 없었지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이런 행위는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며 "서로간의 약속과 배려이고, 가장 조심해야 하는 인간 존엄성의 영역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이어 "우리는 완벽히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실수했을 때 어떻게 반응하고 사과하느냐에서 회사의 문화가 드러난다. 성숙하고 멋있는 문화를 만들면 좋겠다. 카카오 공동체는 건강한 조직이 됐으면 한다"며 "건강하다는 것은 곧 회복탄력성이다. 부딪힘이나 충돌은 당연히 있을 수 있으나 그 후 회복이 잘 되느냐가 중요하다. 내 주변을 살피고 다독여주는 것이 잘되면 좋겠다. 여러분들에게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번 이슈는 사내 문화에 경고등이 켜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억압하고 어렵게 만드는 회사가 안되게 노력해야 한다. 어려움을 외부에 알리는 게 아니라, 내 동료, 내 보스, 내 CEO에 얘기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네카라쿠배? 크네카라쿠!”정보기술(IT) 개발자들 사이에서 연봉 서열 5대 기업으로 통용되는 ‘은어’가 바뀔 참이다. 연초부터 산업계를 강타한 연봉 인상 경쟁이 갈수록 뜨거워지면서다. 크래프톤 연봉 인상이 전격 발표된 직후 IT 기업이 몰려 있는 경기 성남 판교밸리에선 벌써부터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가 아니라 크(크래프톤)네카라쿠로 불러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2000만원 연봉 인상으로 크래프톤은 초봉 기준 IT업계 최고 대우를 하는 기업이 됐다. 개발직군 초봉이 6000만원에 달한다. 인상 직전이 4000만원이었음을 감안하면 한꺼번에 50%나 뛴 셈이다.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 카카오는 개발직군 초봉이 5000만원 정도다. 라인,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운영사) 등 다른 기업들은 이에 조금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IT업계는 이직이 잦다 보니 다른 회사의 연봉 수준이 중요 정보가 되고, 많은 사람이 연봉 서열화에 관심을 둔다. 연봉이 높기로 유명한 기업들을 서열화해 ‘크네카라쿠’ 같은 신조어가 생긴 배경이다. 기존에는 ‘네카라쿠배’란 단어가 통용됐다. IT업계 관계자는 “성과에 따른 보너스가 많은 IT업계지만 안정적으로 나오는 연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그러다 보니 연봉 서열은 많은 기업과 직원들이 신경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신조어는 최근 IT 기업들이 연봉 인상 소식을 발표할 때마다 조금씩 얼굴을 바꾼다. 지난 1일 넥슨이 전 직원을 대상으로 800만원 연봉 인상을 발표한 뒤엔 ‘넥카라쿠배’란 신조어가 돌았다. 지난해 쿠팡이 경력직 채용을 하며 입사 보너스로 5000만원을 지급하자 곧바로 ‘쿠네카라배’가 오르내렸다.기존 기업들도 다급해지고 있다. 본래 게임사 중 최고 대우를 해주는 것으로 알려진 엔씨소프트도 연봉 인상을 고심하고 있다. 업계에선 NHN, 스마일게이트, 펄어비스 등 다른 게임사들도 연봉 인상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구민기 기자 k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