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범의 별 헤는 밤] 은하수 먼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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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여름방학 때 지리산 세석고원에서 야영하다가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떠오르는 오리온 별자리를 봤다. 겨울에나 볼 수 있다고 생각한 별자리가 한여름에 보여서 잠시 어떻게 된 일이지 하는 의구심에 멍한 기분이었다. 지구의 자전 때문에 겨울 별자리를 여름에도 볼 수 있을 거라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때가 8월이었고, 이때쯤엔 밤도 조금 길어져서 새벽이면 쉽게 볼 수 있지만, 보통은 날씨가 좋지 않아 자주 볼 수 없다.
코로나19 사태가 1년 이상 흘렀고, 해가 바뀌어 다시 2월이 지나간다. 이맘때면 겨우내 볼 수 없던 은하수가 새벽에 떠오른다. 새벽녘의 은하수는 별 보기를 시작하는 한 해를 알리며 밤잠을 설칠 만큼 멋진 장면을 연출한다. 단지 보현산천문대에서는 동쪽과 이어진 남쪽 하늘이 도시 불빛 때문에 밝아서 은하수가 수평선과 지평선에 닿은 환상적인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은하수를 보려면 시간이 조금 더 흘러서 고도가 높아져야 하는데 그러면 해가 뜨는 시간과 가까워져서 하늘이 밝아져 버린다. 따라서 보현산천문대에서는 2월 하순이 지나야 은하수를 쉽게 볼 수 있지만, 별을 보는 사람들은 2월 초순이면 경쟁적으로 은하수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가 편의상 계절별 별자리를 이야기하지만 지구의 자전과 밤의 길이를 고려하면 3월에는 전 계절의 별자리를 하룻밤에 다 볼 수 있으며, 기온도 다소 올라가서 별 보기가 한결 쉬워진다.
우리나라의 기후는 연중 맑은 날이 40%를 넘지 못한다. 천문대 관측 기록으로 보면 이보다 더 낮다. 별 보기를 즐기는 사람에겐 달이 밝은 날도 좋지 않다. 또 대부분 직장인이기 때문에 일부러 시간을 낼 수 있는 날을 고려하면 관측할 수 있는 맑은 날 하루의 가치는 훨씬 높아진다.
겨울은 별 보는 사람들에겐 참 좋은 계절이다. 밤이 길어서 여름보다 두 배 정도 더 오래 별을 볼 수 있고, 맑은 날이 다른 계절보다 많아서다. 예전 기억으로 2월엔 별을 보는 날이 절반 정도였지만 올해는 그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들쑥날쑥한 기온 때문에 애를 먹었다. 영하 20도 아래로 뚝 떨어지기도 하고, 다시 영상 10도를 웃돌기도 하는 등 기온 변화가 극심했다. 맑은 날 밤이면, 추워도 너무 추워서 1100m 고지의 천문대에서는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서지 못한 지 오래다.
연구실에 앉아 관측하는 연구자도 힘든데 야외에 망원경과 카메라를 펼쳐놓고 별을 보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 겨울철 별 보기는 별 보기를 진짜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취미다. 극한 직업을 논하지만, 어찌 보면 겨울철 별 보기는 극한 취미다. 그러니 날이 맑으면 별을 보러 나서는 별 보기 전문가들을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전영범 <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
코로나19 사태가 1년 이상 흘렀고, 해가 바뀌어 다시 2월이 지나간다. 이맘때면 겨우내 볼 수 없던 은하수가 새벽에 떠오른다. 새벽녘의 은하수는 별 보기를 시작하는 한 해를 알리며 밤잠을 설칠 만큼 멋진 장면을 연출한다. 단지 보현산천문대에서는 동쪽과 이어진 남쪽 하늘이 도시 불빛 때문에 밝아서 은하수가 수평선과 지평선에 닿은 환상적인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은하수를 보려면 시간이 조금 더 흘러서 고도가 높아져야 하는데 그러면 해가 뜨는 시간과 가까워져서 하늘이 밝아져 버린다. 따라서 보현산천문대에서는 2월 하순이 지나야 은하수를 쉽게 볼 수 있지만, 별을 보는 사람들은 2월 초순이면 경쟁적으로 은하수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가 편의상 계절별 별자리를 이야기하지만 지구의 자전과 밤의 길이를 고려하면 3월에는 전 계절의 별자리를 하룻밤에 다 볼 수 있으며, 기온도 다소 올라가서 별 보기가 한결 쉬워진다.
밤잠을 설칠 만한 새벽녘 은하수
올 2월은 맑은 날이 유난히 많다. 별 보는 사람은 관측을 많이 할 수 있어서 좋겠지만,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 힘들 것이다. 관측을 하다 보면 날씨가 안 좋아서 관측하지 못하는 날만큼 싫은 경우가 없다. 그런데 천문대에 관측하러 가서 배정받은 기간 내내 밤을 새워 관측하는 것도 무척 힘들어서 하루도 못 하는 것 다음으로 두 번째로 싫어하는 경우라고 농담을 한다. 그냥 하루쯤 흐려서 쉬고 싶다는 즐거운 투정일 것이다.우리나라의 기후는 연중 맑은 날이 40%를 넘지 못한다. 천문대 관측 기록으로 보면 이보다 더 낮다. 별 보기를 즐기는 사람에겐 달이 밝은 날도 좋지 않다. 또 대부분 직장인이기 때문에 일부러 시간을 낼 수 있는 날을 고려하면 관측할 수 있는 맑은 날 하루의 가치는 훨씬 높아진다.
겨울은 별 보는 사람들에겐 참 좋은 계절이다. 밤이 길어서 여름보다 두 배 정도 더 오래 별을 볼 수 있고, 맑은 날이 다른 계절보다 많아서다. 예전 기억으로 2월엔 별을 보는 날이 절반 정도였지만 올해는 그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들쑥날쑥한 기온 때문에 애를 먹었다. 영하 20도 아래로 뚝 떨어지기도 하고, 다시 영상 10도를 웃돌기도 하는 등 기온 변화가 극심했다. 맑은 날 밤이면, 추워도 너무 추워서 1100m 고지의 천문대에서는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서지 못한 지 오래다.
겨울철 별 보기는 극한 취미
대신 연구실에 앉아 인터넷에 접속해 원격으로 가동하는 망원경을 움직이지만, 이것도 쉽지 않다. 추워지면 관측 장비가 여러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면 장시간 노출에 필요한 가이드용 CCD 카메라가 자료를 읽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영하 15도 아래로 내려가면 영상 관측을 하는 관측용 CCD 카메라의 필터 휠이 종종 오작동한다. 그러다가 영하 20도 가까이 내려가면 관측용 CCD 카메라까지 오작동이 잦아 총체적으로 문제가 발생한다. 조금이라도 습하면 돔이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1.8m 망원경은 영하 15도 아래로 내려가면 작동을 멈춘다. 습도가 높아도 기온과 관계없이 관측을 멈춘다. 원격관측을 하는 작은 망원경은 영하 15도 아래에서도 좀 더 버티지만 기기 오류에 프로그램 오류까지 더해져 관측 자료를 얻는 효율은 그다지 높지 않다.연구실에 앉아 관측하는 연구자도 힘든데 야외에 망원경과 카메라를 펼쳐놓고 별을 보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 겨울철 별 보기는 별 보기를 진짜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취미다. 극한 직업을 논하지만, 어찌 보면 겨울철 별 보기는 극한 취미다. 그러니 날이 맑으면 별을 보러 나서는 별 보기 전문가들을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전영범 <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