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효리가 톱스타 시절을 돌아보며 요가에 집중하게된 계기에 대해 밝혔다.이효리는 지난 24일 유튜브 채널 '십오야'의 '난다 긴다 아난다 이효리 선생님의 나마스테 요가 클래스-에그문화센터'라는 제목의 영상에 출연했다. 영상은 '이효리의 요가 교실'을 주제로 진행됐다. 이효리는 영상에서 대한민국에서 이효리로 사는 기분이 어떤지를 묻자 "톱스타시절 정신없이 지나가 기고만장했다"며 "주위에서 그렇게 만들기도 했다 '너는 그냥 앉아있어라'란 말이 자연스러웠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그렇게 해도되는가보다 싶었다. 무서울거 없고 당찼던 시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그런게 없어졌을때 상실감 있다"라며 "그런거 없이 사는게 오히려 좋다"고 말했다.그러면서 요가로 인생이 바뀌었다고도 고백했다. 특히 '요가원'을 연 것이 개인에게도 많은 도움이 됐다고 했다. 이효리는 "요가원을 열면서 정신없이 할 일을 해야 하니까 많이 도움이 되는 거 같다"라며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는데 그러면 전날 무조건 오후 10~11시에는 자야 한다. 나만의 규칙을 만들어 놓으니 정신이 건강하게 유지가 될 수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그러면서 요가원을 하는 이유에 대해 "난 요가 때문에 내 삶에 혜택을 많이 봤다. 마음 놓고 터놓고 지낼 수 있는 친구들도 요가로 만났다"라며 "나랑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도 요가를 배워서 조금 편안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고 돌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라고 덧붙였다.최수진 한경닷컴 기자 naive@hankyung.com
축구 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41)와 2018~2021년 함께 생활하며 식단을 책임진 전담 셰프가 호날두의 식단에 관해 밝혔다. 핵심은 호날두가 우유를 식단에서 완전히 배제하고 설탕도 먹지 않았다는 것이다.25일 미국 연예 매체 쇼비즈 치트시트에 따르면 호날두의 전담 셰프였던 조르조 바론은 호날두의 식단 원칙 중 하나로 "우유를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바론은 "인간은 다른 동물의 젖을 마시는 유일한 동물"이라며 "내 생각에는 그것은 잘못된 일이다. 유아기 이후 우유를 마시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커피는 우유와 설탕 없이 마신다고 한다. 바론은 “매우 쓰지만, 아몬드밀크나 오트밀크, 쌀우유를 넣는 것은 가능하다”고 했다.설탕도 먹지 않는다고 했다. 바론은 "커피에도 설탕을 넣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침 식사는 단맛을 뺀 달걀과 아보카도, 통밀빵, 커피, 충분한 물을 기본으로 했다. 모든 식사에서도 설탕을 빼는 방식이다. 돼지고기는 지방이 많아 자주 먹지 않고, 먹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허용한다고 했다.식단에서 섬유질과 비타민도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바론은 “섬유질은 매일 식단에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 영양소 중 하나”라며 “나는 채소 없는 식사를 준비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비타민 섭취의 중요성도 강조하며 비타민D를 예로 들었다.바론은 식단과 운동의 비중에 대해 “중요한 것은 식단 60%, 운동 40%”라며 “인체는 자동차와 같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차를 가져도 엔진에 잘못된 연료를 넣으면 제대로 달릴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스페인, 아르헨티나, 브라질 선수들과도 일해 봤지
그 남자는 평생 자기 집을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평생 남의 집을 전전하며 살았지요. 한곳에 머물다가 떠나고, 또 다른 집에 들어가 살다가 또 떠나고…. 그런 떠돌이 생활이 끝없이 반복됐습니다.가난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그는 돈을 꽤 잘 벌었습니다. 화가였던 그는 프랑스 왕립 아카데미 회원이었습니다. 은행가와 미술상들이 줄 서서 그의 그림을 샀습니다. 하지만 번 돈을 모으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맨손으로 출발한 뜨내기였습니다. 집을 살 만큼 돈을 모으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폐병까지 앓고 있었습니다. 항상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그에게 미래를 준비할 여유는 없었습니다.그런데 그가 그린 그림은 세상에서 가장 우아했습니다. 화려한 파티가 열리고, 아름다운 공원에서 귀족 남녀가 사랑을 속삭이고, 음악을 듣고, 춤을 추는 장면. 37세의 젊은 나이로 죽을 때까지, 그는 자신이 결코 초대받을 수 없는 파티를 그렸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들은 서양미술사에서 ‘로코코’라고 불리는 화려한 미술의 시대를 엽니다. 로코코를 만든 화가, 앙투안 바토(1684~1721)의 이야기. 파리의 이방인1684년 바토는 프랑스 북부의 도시 발랑시엔에서 지붕 수리공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했지만, 그림에는 재능이 있어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18세가 된 바토는 돈도 연줄도 없이 파리로 떠납니다.무일푼으로 며칠을 걸어 도착한 파리. 그곳의 사람들은 바토에게 차가웠습니다. 바토의 고향인 발랑시엔은 불과 6년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 땅이 아니었습니다. 스페인이 지배하던 네덜란드의 영토를 루이 14세가 전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