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단일 의료보험이라는 독특한 건강보험 시스템을 갖고 있다. 단일 의료보험은 장점이 많은 제도지만, 단점도 있다. 보험 적용에서 배제된 의료기기 도입이 사실상 막히는 게 대표적인 예다. 의료 혁신이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시점에서 고민해봐야 할 대목이다.

이런 고민에 대해 최근 세계 각국의 국영 의료보험은 혁신적 의료기술을 받아들이기 위해 파격적으로 지급 구조를 개선하고 있다. 최근 미국 보험청(CMS)은 혁신적 의료기술에 자동으로 보험 수가를 적용하는 ‘혁신 기술 메디케어 보험급여(MCIT)’ 방안을 제시했다. 혁신의료기기로 규정된 의료기기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인허가만 받으면 국영 의료보험 메디케어를 무조건 4년 동안 적용하겠다는 실로 파격적인 방안이다.

최근 몇 년간 미국은 혁신의료기기로 지정된 기기에 대해 허가 과정을 간소화해주는 등의 혜택을 줬다. 여기에 더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보험까지 적용해주는 것이다. 미국에는 인공지능, 디지털 치료제, 전자약 등 300개 이상의 혁신의료기기가 지정된 상태다. MCIT가 시행되면 이들의 시장 진출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독일은 더 과감하다. 디지털 헬스케어 앱이 의료기기 허가를 받기만 하면 무조건 임시 수가를 최장 24개월간 부여하는 DiGA 제도를 작년부터 시작했다. 이 정책을 시행한 데는 그동안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선도하지 못했다는 독일 정부의 위기감이 반영돼 있다. 그 결과 독일에서는 10개의 디지털 헬스케어 앱이 수가를 받기 시작했다. 디지털 치료제가 주를 이룬다. 적응증은 당뇨, 우울증, 불면증, 편두통, 이명 등 다양하다. 이 제도에서는 수가를 개발 업체가 자율적으로 정하는데, 116유로에서 743유로까지 폭넓게 책정돼 있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에서도 의료산업 발전을 위해 다양한 지원책, 규제 개선책이 나왔지만 핵심인 지급 구조 개선에 대한 논의는 없다. 단일 보험 체계에서 지급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다른 모든 진흥책은 미봉책일 뿐이다. 미국처럼 한국에도 혁신의료기기, 혁신의료기술 등의 지정 제도가 있지만, 모두 수가와는 관련이 없다. 이 때문에 식약처 허가를 받은 60개가 넘는 인공지능 기술은 수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는 디지털 치료제 역시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비슷한 운명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본질은 결국 지급 구조다. 한국에서 이 논의는 수년째 공회전만 반복하고 있다. 혁신적 기술을 도입하고 의료 산업을 진흥하기 위해서는 미국이나 독일처럼 지급 구조의 혁신 외에는 답은 없다. 이 근본적인 문제를 계속 회피한다면 공회전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정부당국은 그동안 해외에도 그런 사례가 없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이제 선례가 생겼다. 변화해야 할 이유도, 명분도, 선례도 있다. 진정 변화를 원한다면 지금이 적기다.

최윤섭 <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