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구직자들 우울감 중등도…"절박함에서 나온 방어기제"
이름 바꾸고 격투기 배우고…청년들 '코로나 블루' 분투기
취업준비생 A(27)씨는 지난해 마지막 날 법원에 개명 신청서를 냈다.

지난해 10곳이 넘는 회사에 지원했지만 대부분 서류심사 문턱도 넘지 못하자 아버지가 "점집에 가보자"고 했고, 이름 풀이를 한 무속인이 "어느 회사도 알아보지 않을 이름"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A씨는 13일 "평소라면 씨도 안 먹힐 말이지만 시험에서 미끄러지고 우울감에 빠지니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며 "절차가 있어 개명을 마치는 데 2∼3개월 걸린다고 하지만 이름을 바꾸면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취업 준비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취업난이 1년째 이어지면서 우울감에 시달리다 이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버티기'를 해보려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 청년위원회가 이달 2일 발표한 청년 구직자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1.7%가 코로나19 사태로 구직이 어려워졌다고 답했다.

기업의 채용 감축, 아르바이트 등 단기 일자리 감소, 직업훈련과 자격증 시험 등 구직 준비 기회 감소 등이 어려움으로 꼽혔다.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을 우울척도검사(CES-D)로 점수화했더니 전체 응답자 평균은 23.2점으로 나타났다.

21점을 넘으면 중등도 우울, 25점 이상이면 전문가 상담이 필요한 중증 우울 증상으로 분류된다.

구직 기간이 1년을 넘은 응답자는 평균 25.9점이었다.

지난해 취업 준비를 위해 부산에서 상경한 조민희(27)씨는 객지에서 고립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자주 가던 대학 도서관이 운영시간을 단축하고, 매주 하던 스터디 모임도 화상 대화로 바뀌면서 집 밖에 나갈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은 곳에서의 고립감은 우울감으로 연결됐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운동이다.

조씨는 "최근 권투를 배우는데 잡념도 사라지고 건강도 좋아졌다"며 "혼자 방에만 있을 때보다 살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름 바꾸고 격투기 배우고…청년들 '코로나 블루' 분투기
공기업 취업을 준비 중인 강다찬(24)씨도 요즘 오후 7시면 무에타이 도장에 나가 땀을 흘린다.

강씨는 "채용 일정이 미뤄져 집에서 컴퓨터 화면과 텔레비전만 보다 집단감염 소식이 나오니 `저런 일 때문에 취업을 못 한다'는 부정적인 생각만 들더라"며 "나쁜 마음을 떨쳐보려 운동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조철현 세종 충남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울증은 대개 30∼40대가 겪는 질환인데 코로나 사태 이후로 젊은층에서도 늘고 있다"며 "내원하는 젊은 환자들을 보면 과음하거나 잠을 안 자는 등 자기파괴적 상태가 많다"고 말했다.

강동우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팔자를 탓하거나 개명하는 것은 절박함에서 나온 방어기제로 보인다"며 "그만큼 20대가 지금 상황에서 느끼는 절망감이 크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