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하우스서 숨진 이주노동자 사십구재 "부디 좋은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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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앙쯔잉 도이 간소커디품(좋은 데로 가길 바랍니다.
)"
7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삼청로 법련사 법당에 모인 캄보디아 노동자 20여 명과 린사로 캄보디아 스님 등은 혹한 속의 비닐하우스에서 숨진 캄보디아 출신 30대 여성 이주노동자 속헹 씨의 극락왕생을 이런 말로 빌었다.
속헹 씨는 영하 20도가 넘나들던 지난해 12월 20일 새벽 경기 포천시 일동면의 한 농장 비닐하우스 내 '숙소'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당시 속헹 씨는 실로 짠 옷을 껴입고 이불에 둘러쌓여 있었지만 난방이 끊어졌고 혹한이 몰아치던 때라 동료와 시민운동가들은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경찰의 부검 결과 사인은 간경화로 나왔다.
하지만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등은 "간경화가 직접 사인일지라도 간경화 환자에게 치명적이라고 하는 급격한 기온 저하다"라며 여전히 추위가 사인이라고 믿는다.
화장된 속헹 씨는 곧바로 고향으로 옮겨져 부랴부랴 장례가 치러졌다고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양한웅 위원이 전했다.
이날은 속헹 씨가 숨진 지 49일째 되는 날로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가 주관해 그의 극락왕생을 비는 사십구재를 올렸다.
속헹 씨의 영정 사진 아래 제단의 제기 위에는 바나나를 비롯해 애플망고, 패션프루트, 샤인 머스킷 등 열대과일이 높게 쌓여 앞줄에 놓여졌고, 캄보디아인들이 즐겨 먹는 약과처럼 생긴 '언썸'도 두 접시 마련됐다.
캄보디아 노동자들은 반야심경 독송에 맞춰 하얀 국화 꽃송이를 영전에 올리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이들의 얼굴에는 안타까움과 분노, 절망이 뚝뚝 묻어났다.
재를 집례한 조계종 서원 스님은 "부모와 가족을 부양하고자 여기에 일하러 온 캄보디아 노동자들의 인권과 인생을 생각해달라"면서 "허무하게 숨을 거둔 속헹의 극락왕생을 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산하 이주노동자 노조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열악한 환경의 '기숙사'에 살고 있어도 사업장 변경이 불가능한 탓에 옮기지 못하고 고통받다가 죽고 난 다음에야 떠난다"며 "주거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정을 불살라 재를 마친 이들은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라고 세 번씩 외친 후 법당을 벗어났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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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삼청로 법련사 법당에 모인 캄보디아 노동자 20여 명과 린사로 캄보디아 스님 등은 혹한 속의 비닐하우스에서 숨진 캄보디아 출신 30대 여성 이주노동자 속헹 씨의 극락왕생을 이런 말로 빌었다.
속헹 씨는 영하 20도가 넘나들던 지난해 12월 20일 새벽 경기 포천시 일동면의 한 농장 비닐하우스 내 '숙소'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당시 속헹 씨는 실로 짠 옷을 껴입고 이불에 둘러쌓여 있었지만 난방이 끊어졌고 혹한이 몰아치던 때라 동료와 시민운동가들은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경찰의 부검 결과 사인은 간경화로 나왔다.
하지만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등은 "간경화가 직접 사인일지라도 간경화 환자에게 치명적이라고 하는 급격한 기온 저하다"라며 여전히 추위가 사인이라고 믿는다.
화장된 속헹 씨는 곧바로 고향으로 옮겨져 부랴부랴 장례가 치러졌다고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양한웅 위원이 전했다.
이날은 속헹 씨가 숨진 지 49일째 되는 날로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가 주관해 그의 극락왕생을 비는 사십구재를 올렸다.
속헹 씨의 영정 사진 아래 제단의 제기 위에는 바나나를 비롯해 애플망고, 패션프루트, 샤인 머스킷 등 열대과일이 높게 쌓여 앞줄에 놓여졌고, 캄보디아인들이 즐겨 먹는 약과처럼 생긴 '언썸'도 두 접시 마련됐다.
캄보디아 노동자들은 반야심경 독송에 맞춰 하얀 국화 꽃송이를 영전에 올리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이들의 얼굴에는 안타까움과 분노, 절망이 뚝뚝 묻어났다.
재를 집례한 조계종 서원 스님은 "부모와 가족을 부양하고자 여기에 일하러 온 캄보디아 노동자들의 인권과 인생을 생각해달라"면서 "허무하게 숨을 거둔 속헹의 극락왕생을 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산하 이주노동자 노조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열악한 환경의 '기숙사'에 살고 있어도 사업장 변경이 불가능한 탓에 옮기지 못하고 고통받다가 죽고 난 다음에야 떠난다"며 "주거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정을 불살라 재를 마친 이들은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라고 세 번씩 외친 후 법당을 벗어났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