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관리 초점 실무형 관료 내각 예상…의회 협조 얻을지는 미지수

이탈리아 정국위기 속 드라기 전 ECB총재 등판…내각 구성 착수
마리오 드라기(74)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이탈리아 정국 위기의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ANSA 통신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오후 집무실이자 관저인 로마 퀴리날레 궁에서 드라기 전 총재를 면담한 뒤 총리 자격으로 내각을 꾸려달라고 요청했다.

드라기 전 총재는 면담 후 가진 브리핑에서 이러한 책무를 받들기로 했다면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단합된 모습을 보여줄 것을 의회에 촉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드라기 전 총재는 위기 극복에 초점을 맞춘 관료 중심의 실무형 거국 내각 구성을 타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M5S)과 중도 좌파 성향의 민주당(PD), 중도 정당 생동하는 이탈리아(IV) 등 기존 연정 구성 정당 3당은 2일까지 재결합을 위한 협상을 벌였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방향은 물론 내각 장관 배분 등에서도 첨예한 이견을 노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2019년 9월 출범한 3당 연정은 2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공중분해됐다.

연정을 이끌어온 주세페 콘테 총리 역시 위태롭게 이어져 온 정치적 여정의 종착역에 닿았다.

IV가 연정 이탈을 선언하며 정국 위기를 촉발한 지 13일 만인 지난달 26일 총리직에서 사퇴한 그는 임시로 내각 업무를 챙기며 연정 구성 협상 과정을 주시해왔다.

오성운동과 민주당의 강력한 지지를 등에 업고 연정 구성권을 다시 부여받아 총리직 복귀를 노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탈리아 정국위기 속 드라기 전 ECB총재 등판…내각 구성 착수
내각 구성권을 넘겨받은 드라기 전 총재는 2011년부터 8년간 유럽연합(EU)의 통화정책을 총괄하는 ECB 사령탑을 지냈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금융경제 전문가로 학계와 정부, 국제금융권을 두루 거쳤다.

이탈리아 재무부 고위 관리, 이탈리아중앙은행 총재, 세계은행 집행 이사, 골드만삭스 부회장 등 이력이 화려하다.

ECB 총재 취임 1년 뒤인 2012년에는 남유럽 재정위기로 촉발된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9개국) 붕괴 쓰나미를 막아내며 '슈퍼 마리오'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정계 안팎에서는 그의 경력이나 능력에 비추어 마타렐라 대통령이 비정치적 거국 내각을 구성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다면 유력한 총리 후보라는 관측이 많았다.

다만, 그가 의회의 협조 속에 순조롭게 내각을 꾸릴 수 있을지, 혹은 새 내각이 의회 신임을 받을 수 있을지 등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다.

새 내각은 상·하원의 신임안 표결에서 과반의 지지를 받아야 공식 출범할 수 있다.

당장 원내 최대 정당인 오성운동은 '테크노크라트(전문 관료) 정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야권인 '우파연합'의 맹주로 전국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극우 정당 동맹(Lega)도 여전히 조기 총선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동맹이 1년 이내 총선 실시를 조건으로 드라기 내각을 지지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으나 어쨌든 방점은 총선에 찍혀있는 모양새다.

민주당은 다른 정당의 동태를 살피며 명확한 입장 표명을 아끼고 있다.

시장은 일단 드라기 전 총재의 등판에 긍정적인 신호를 발신했다.

'드라기 효과'로 이날 밀라노 증시(FTSE MIB)는 2.52% 상승했고, 10년물 기준으로 이탈리아와 독일의 국채 금리 격차(스프레드)도 103bp(1bp=0.01%포인트)까지 떨어져 지난달 중순 이래 최저를 기록했다.

유럽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꼽히는 독일 국채와의 스프레드 축소는 경제적 위험이 그만큼 작아졌다는 의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