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2월 6일 새벽 4시 전북 완주군 삼례읍의 작은 가게 '나래슈퍼' 3인조 강도가 들었다.

이들은 유모 할머니(당시 76세) 등 피해자 3명의 눈과 입 등을 테이프로 막고 현금과 패물을 훔쳐 달아났고, 유 할머니는 질식해 목숨을 잃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경찰은 임모 씨 등 19∼20세의 청소년 3명을 이 강도치사 사건의 범인으로 입건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데다 지적장애를 앓고 있던 이들 '삼례 3인조'는 경찰의 폭행과 강요 끝에 수사 과정에서 범행을 허위 자백했고, 징역 3~6년을 선고받고 만기 출소했다.

3인조 중 한 명은 "경찰의 강압수사 때문에 허위자백을 했다"며 재심을 청구했지만 허사였다.

억울한 수감생활 중에도 누명을 벗을 기회가 있었다.

삼례 3인조가 확정판결을 받은 지 한 달 뒤인 11월 부산지검에 이 사건의 다른 용의자 3명이 검거돼 범행을 자백한 것이다.

그러나 전주지검에 이첩된 뒤 이들은 자백을 번복했고 결국 무혐의 처분으로 풀려났다.

이때 '삼례 3인조'를 기소하고 '부산 3인조'를 불기소한 검사는 동일인이었다.

사건은 그렇게 잊히는 듯했으나, 재심 사건 전문가인 박준영 변호사가 2015년 이들과 함께 재심을 청구해 개시 결정을 받아내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재심 재판 중 부산 3인조 중 한 명인 이모씨가 법정에 직접 출석해 자신이 '진범'이라고 고백하며 범행 수법과 도구, 사건 현장 내부 구조 등을 정확하게 설명했다.

이씨는 과거 전주지검에서 수사를 받을 때 사실대로 이야기했지만 수사관이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며 "죗값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냥 넘어갔지만 사건 이후 악몽을 꾸고 마음의 짐을 갖고 살았다"고 뒤늦게 고백했다.

다만 공소시효가 지나 책임을 물을 수는 없었다.

재심 재판부는 2016년 "진범이 양심선언을 한 데다 무죄를 인정할만한 새롭고 명백한 증거가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고, 판결이 확정돼 이들의 억울함은 17년 만에 풀리게 됐다.

이후 1999년 당시 수사기관의 부실·조작 수사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었고, 경찰은 사죄의 뜻을 밝혔다.

임씨 등 삼례 3인조와 그들의 가족들이 국가와 당시 수사 검사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법원은 수사기관의 책임을 인정했다.

지난달 2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7부(박석근 부장판사)는 국가와 수사 검사가 임씨 등에게 수억 원대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하면서 1999년 사건 당시와 이후 재수사 과정에서 수사기관이 피해자들에게 폭언과 함께 허위 진술을 강요해 범인을 조작한 정황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그러면서 "피고(당시 검사)는 진범을 밝혀내고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수사를 한 것이 아니라, 진범 3인의 진술과 실제 현장 사이의 모순점이나 불일치를 찾아내 부각하는 데 주력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