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회장 뽑은 대한변협, 법치 제 역할 해낼까 [여기는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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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3만명 시대, 나라 난장 만드는 것도 법전문가
'이종엽 체제’ 어깨 무겁다
'이종엽 체제’ 어깨 무겁다
은행은 사실상 국가로부터 ‘허가증’을 받아야 가능한 사업이다. 수많은 종류의 산업과 각종 사업·비즈니스 가운데 정부가 엄격한 심사기준에 따라 은행사업을 ‘승인·허가’ 하는 것은 은행업의 중요성이랄까, 파급 영향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가령 언론사라고 해도 일정 요건만 맞추어 ‘신고’만 하면 된다.
이런 이유로 정부가 은행을 과도하게 감시 감독하고 경영에 개입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어떤 비즈니스 영역보다 은행에 대해서만큼은 정부 간섭도 조금 더 용인 받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고객 예금을 아무렇게나 운용했을 때 뒤따르는 문제점, 그렇게 해서 은행이 부실해질 경우 국민 혈세를 퍼부어 예금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현실, 은행시스템이 망가질 경우 전체 경제가 마비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IMF 외환위기’때 생생하게 경험 했던 것이다. 은행이 부실해지고 망가지면서 당시 64조원의 막대한 공적자금이 조성됐으나 모자라 추가로 동원했었다.
은행과 비슷한 맥락에서 국가가 발급해주는 자격증이 있다. 산업 육성, 전문화·분업화 촉진, 다양한 직업세계의 발전 등의 이유에서 수많은 정부공인 자격증 제도가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엄격하게 발급되고, 보편적이며, 그래서 신뢰받을 만을 만한 자격증이 의사면허증과 변호사자격증일 것이다.
의사면허증에 대해서는 다시 언급할 것도 없다. 부정입학 의혹의 ‘조민 사태’에 많은 이들이 관심 갖고 문제제기를 하는 것도 의사면허증의 중대함을 반영하기에 충분했다.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사법시험이라는 가히 최고 국가공인 시험을 거쳐야 변호사자격증이 나왔다. 사시가 없어지고 로스쿨제도가 대체된 이후에도 변호사는 엄격한 과정과 어려운 시험을 거쳐 생성된다. 변호사 숫자가 급증해 ‘몸값’에 거품도 많이 빠졌다지만 그 자격증이 갖는 사회적 의미나 경제적 가치는 크게 줄지 않았다.
부정적 시각에서 보면 변호사야말로 대표적인 ‘지대추구(rent seeking)’형
자격증이다. 끼리끼리 아성을 쌓은 기득권 체제로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그래서 한국에서 가장 무서운 법 가운데 하나나 ‘변호사법’이기도 하다. 변호사 자격증도 없이 알선 중재 로비나 유사한 행위에 나섰다가는 자칫 경을 치게 된다. 툭하면 벌어지는 자격사들끼리 싸움에서도 변호사그룹의 파워를 늘 보게 된다. 변호사와 세무사들의 해묵은 갈등, 때로는 변호사와 부동산 중개사들과의 긴장 같은 것도 그렇다. ‘현상유지= 기득권’이라는 프레임으로 보면 이런 갈등에서도 변호사가 ‘갑’처럼 된다. 그만큼 변호사들의 사회적 힘이 큰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법률가라는 전문가 집단의 영향력은 그만큼 크다. 우선 재조(在朝)의 법률가인 판사와 검사가 모두 잠재적 변호사이다. 옷만 벗으면 변호사회 회원이니 잠재적이 아니라, 사실상 변호사들이다. 또 하나는 사법부(판사) 행정부(검사) 외에 입법부(국회)도 변호사 천지라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단일 직종으로 최대 다수 그룹이 변호사들일 것이다. 여야로 나눠 싸우지만 법조인, 변호사라는 점에서는 현상 이면의, 수면 아래의 공감대가 있는 그룹이다. 그렇게 변호사법은 아성이 되고 변호사는 대표적인 지대추구형 자격증으로 수 십 년간 지속돼 왔다. 정부가 공인하고 승인한 자격증이다.
변호사 집단이 막강해진 것은 입법 사법 행정부를 사실상 장악한 재조의 힘 때문만이 아니다. 재야(在野)에서도 마찬가지다. 재야, 민간 부문에서도 변호사들은 대한변호사협회를 구성해 대한민국 사법체제의 한 축을 구성하고 있다. 법률가 그룹이 재조·재야의 양축을 돌리며 우리 사회의 법치(法治)를 리드하고 있는 것이다. 합리적 입법과 논란 없는 준법은 법치주의를 확립하고 인치(人治)가 아닌 법치의 선진 민주사회로 가는 데 필수 중의 필수다. 법조인들이 제 역할을 하는 것은 그래서 우리 사회의 어떤 전문가 그룹보다 중요하다.
변호사들의 법적 결사체인 대한변호사협회도 그런 점에서 매우 중요한 단체다. 비록 재야(민간)의 단체이고, 직접적 입법권·사법권·행정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지만 실체적 비중은 그만큼 크다. 현직의 판사·검사, 법조인 국회의원들도 물러나면 대부분이 회원인 단체다.
변협은 그동안 적지 않은 역할을 해왔다. 고비 고비마다 필요한 목소리도 내왔다. 이따금씩 내는 성명이나 입장문은 재조 법조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정치 쪽으로 파급력도 어느 곳보다 컸다. 법률 전문가들이 최소한의 역할을 해왔고, 정부를 비롯해 우리 사회가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변협의 존재감이 이전만 못 했다. 심하게 말하면 ‘지대추구’로 변호사들의 집단이익이나 지키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혔다. 민변·한변 등으로 나뉜 변호사 그룹 내 진영논리가 크게 불거지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이 새로 뽑혔다. 이종엽 신임 변협회장(58) 체제의 변협은 달라질까. 51대째 회장이니 변협의 역사도 만만찮다. 변협이 준엄하게 제 목소리를 내고 ‘사법 정의’와 ‘법치’를 외친다면 최근처럼 법조계와 법조인들을 둘러싼 어이없는 소란과 잡음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조국-추미애를 거쳐 박범계까지 법무부 장관들의 자격 논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사이의 비생산적 갈등, 국정의 블랙홀처럼 됐던 공수처 출범 관련 논쟁, 법률가(변호사) 출신 국회의원들의 일탈적 행보 등 변협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내야 하는 사안은 늘렸다. 국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과잉 입법’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 내 재조법조인들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법조계의 다른 바퀴를 담당하는 재야의 변협이 해야 할 일이 많다. 이들 전문 법률가의 양심에 따라 올바른 소리를 내는 용기를 가질 때 법치가 이뤄지고 변호사자격증도 빛이 날 것이다. 임성근 판사에 대한 거대 여당의 탄핵 발의안에 대한 입장 발표 여부도 신임 이 회장의 행보를 판단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변협 회원 수는 최근 급증해 국내에서도 ‘변호사 3만명 시대’에 들어섰다. 법치에 어떻게 기여하고 주도할지, 이종엽 체제를 주목하게 된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이런 이유로 정부가 은행을 과도하게 감시 감독하고 경영에 개입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어떤 비즈니스 영역보다 은행에 대해서만큼은 정부 간섭도 조금 더 용인 받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고객 예금을 아무렇게나 운용했을 때 뒤따르는 문제점, 그렇게 해서 은행이 부실해질 경우 국민 혈세를 퍼부어 예금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현실, 은행시스템이 망가질 경우 전체 경제가 마비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IMF 외환위기’때 생생하게 경험 했던 것이다. 은행이 부실해지고 망가지면서 당시 64조원의 막대한 공적자금이 조성됐으나 모자라 추가로 동원했었다.
은행과 비슷한 맥락에서 국가가 발급해주는 자격증이 있다. 산업 육성, 전문화·분업화 촉진, 다양한 직업세계의 발전 등의 이유에서 수많은 정부공인 자격증 제도가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엄격하게 발급되고, 보편적이며, 그래서 신뢰받을 만을 만한 자격증이 의사면허증과 변호사자격증일 것이다.
의사면허증에 대해서는 다시 언급할 것도 없다. 부정입학 의혹의 ‘조민 사태’에 많은 이들이 관심 갖고 문제제기를 하는 것도 의사면허증의 중대함을 반영하기에 충분했다.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사법시험이라는 가히 최고 국가공인 시험을 거쳐야 변호사자격증이 나왔다. 사시가 없어지고 로스쿨제도가 대체된 이후에도 변호사는 엄격한 과정과 어려운 시험을 거쳐 생성된다. 변호사 숫자가 급증해 ‘몸값’에 거품도 많이 빠졌다지만 그 자격증이 갖는 사회적 의미나 경제적 가치는 크게 줄지 않았다.
부정적 시각에서 보면 변호사야말로 대표적인 ‘지대추구(rent seeking)’형
자격증이다. 끼리끼리 아성을 쌓은 기득권 체제로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그래서 한국에서 가장 무서운 법 가운데 하나나 ‘변호사법’이기도 하다. 변호사 자격증도 없이 알선 중재 로비나 유사한 행위에 나섰다가는 자칫 경을 치게 된다. 툭하면 벌어지는 자격사들끼리 싸움에서도 변호사그룹의 파워를 늘 보게 된다. 변호사와 세무사들의 해묵은 갈등, 때로는 변호사와 부동산 중개사들과의 긴장 같은 것도 그렇다. ‘현상유지= 기득권’이라는 프레임으로 보면 이런 갈등에서도 변호사가 ‘갑’처럼 된다. 그만큼 변호사들의 사회적 힘이 큰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법률가라는 전문가 집단의 영향력은 그만큼 크다. 우선 재조(在朝)의 법률가인 판사와 검사가 모두 잠재적 변호사이다. 옷만 벗으면 변호사회 회원이니 잠재적이 아니라, 사실상 변호사들이다. 또 하나는 사법부(판사) 행정부(검사) 외에 입법부(국회)도 변호사 천지라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단일 직종으로 최대 다수 그룹이 변호사들일 것이다. 여야로 나눠 싸우지만 법조인, 변호사라는 점에서는 현상 이면의, 수면 아래의 공감대가 있는 그룹이다. 그렇게 변호사법은 아성이 되고 변호사는 대표적인 지대추구형 자격증으로 수 십 년간 지속돼 왔다. 정부가 공인하고 승인한 자격증이다.
변호사 집단이 막강해진 것은 입법 사법 행정부를 사실상 장악한 재조의 힘 때문만이 아니다. 재야(在野)에서도 마찬가지다. 재야, 민간 부문에서도 변호사들은 대한변호사협회를 구성해 대한민국 사법체제의 한 축을 구성하고 있다. 법률가 그룹이 재조·재야의 양축을 돌리며 우리 사회의 법치(法治)를 리드하고 있는 것이다. 합리적 입법과 논란 없는 준법은 법치주의를 확립하고 인치(人治)가 아닌 법치의 선진 민주사회로 가는 데 필수 중의 필수다. 법조인들이 제 역할을 하는 것은 그래서 우리 사회의 어떤 전문가 그룹보다 중요하다.
변호사들의 법적 결사체인 대한변호사협회도 그런 점에서 매우 중요한 단체다. 비록 재야(민간)의 단체이고, 직접적 입법권·사법권·행정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지만 실체적 비중은 그만큼 크다. 현직의 판사·검사, 법조인 국회의원들도 물러나면 대부분이 회원인 단체다.
변협은 그동안 적지 않은 역할을 해왔다. 고비 고비마다 필요한 목소리도 내왔다. 이따금씩 내는 성명이나 입장문은 재조 법조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정치 쪽으로 파급력도 어느 곳보다 컸다. 법률 전문가들이 최소한의 역할을 해왔고, 정부를 비롯해 우리 사회가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변협의 존재감이 이전만 못 했다. 심하게 말하면 ‘지대추구’로 변호사들의 집단이익이나 지키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혔다. 민변·한변 등으로 나뉜 변호사 그룹 내 진영논리가 크게 불거지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이 새로 뽑혔다. 이종엽 신임 변협회장(58) 체제의 변협은 달라질까. 51대째 회장이니 변협의 역사도 만만찮다. 변협이 준엄하게 제 목소리를 내고 ‘사법 정의’와 ‘법치’를 외친다면 최근처럼 법조계와 법조인들을 둘러싼 어이없는 소란과 잡음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조국-추미애를 거쳐 박범계까지 법무부 장관들의 자격 논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사이의 비생산적 갈등, 국정의 블랙홀처럼 됐던 공수처 출범 관련 논쟁, 법률가(변호사) 출신 국회의원들의 일탈적 행보 등 변협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내야 하는 사안은 늘렸다. 국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과잉 입법’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 내 재조법조인들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법조계의 다른 바퀴를 담당하는 재야의 변협이 해야 할 일이 많다. 이들 전문 법률가의 양심에 따라 올바른 소리를 내는 용기를 가질 때 법치가 이뤄지고 변호사자격증도 빛이 날 것이다. 임성근 판사에 대한 거대 여당의 탄핵 발의안에 대한 입장 발표 여부도 신임 이 회장의 행보를 판단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변협 회원 수는 최근 급증해 국내에서도 ‘변호사 3만명 시대’에 들어섰다. 법치에 어떻게 기여하고 주도할지, 이종엽 체제를 주목하게 된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