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이후 139가구 지원…노인들 반응 폭발적, 가성비도 높아
"나이 들어 봐. 해가 갈수록 마루가 어찌나 높아지는지 신발 신고 나가기가 무서워져. 마실 갈 때 잘못해 넘어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겁부터 났지" 충북 영동군 학산면 공암리에 사는 한행순(87) 할머니가 바깥출입을 꺼리기 시작한 것은 두 해 전부터다.
8년 전 인공관절 수술을 하고도 마실 정도는 거뜬했는데, 2년 전 골목에서 넘어져 고관절 수술을 받고부터는 거동하는 게 힘들어졌다.
홀로 사는 그는 자칫 넘어져 다치더라도 곧바로 병원 가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 걱정에 이웃에 놀러 가는 것마저 꺼리게 됐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마실 가는 게 낙이 됐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장애인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영동군이 농촌 주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뜰방의 높낮이를 낮추는 환경개선 사업을 하고부터다.
옛날 집에는 방문 바깥쪽을 땅바닥보다 더 높이 편평하게 다진 흙바닥이 있는데, 이걸 토방(土房) 또는 토(土)마루라고 한다.
여기에 쪽마루를 놓기도 한다.
이 토방의 사투리가 뜰방이다.
방이나 거실에서 나올 때는 뜰방에 벗어놓은 신발을 신어야 하니 자칫 잘못하면 넘어져 다치기 십상이다.
이런 불편을 풀어준 게 '편안한 뜰방 가꾸기' 사업이다.
계단이나 경사로를 설치해 방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고 밖으로 나올 때도 불편하지 않도록 해 준 것이다.
이 사업은 뜰방이 높아 불편하다는 어르신들의 하소연을 들은 박세복 군수의 지시로 2019년 시작됐다.
공무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을 돌면서 이 사업을 발굴해 냈다.
영동군은 첫해 79가구, 지난해 60가구를 지원했다.
휠체어 등 보조기구를 이용하는 고령자와 장애인 주택에는 주거 여건을 고려해 경사로를 깔았고, 걷는 게 가능한 어르신들의 집에는 뜰방 높이를 낮춰주는 계단을 설치했다.
많은 예산이 필요하지도 않다.
사업을 처음 시작한 2019년에는 1억6천만원, 지난해 1억5천만원을 지출했다.
어르신들의 반응은 상상외로 좋았다.
상촌면에 거주하는 강량식(84) 할머니는 "다리가 아파 집에 들어가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지금은 오르락내리락하기가 너무 편해졌다"며 입이 닳도록 이 사업을 칭찬했다.
하루 정도면 경사로나 계단 설치가 가능하다.
며칠씩 뚝딱 거리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고, 한나절 마실 다녀오면 공사가 마무리된다는 점에서 주민 만족도가 꽤 높다고 한다.
영동군은 노인 인구가 31.8%에 달하는 초고령 사회다.
어르신들이 점점 많아지는 상황에서 뜰방 가꾸기 사업은 농촌 현실에 제격이라는 게 군의 설명이다.
군은 올해 100가구를 지원하기로 하고 수요조사가 끝나는 대로 추가경정예산에 사업비를 편성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이동이 불편한 군민들의 신청을 조만간 받을 계획이다.
지원 대상은 기초생활보장수급자와 차상위 계층, 장애인, 65세 이상 고령자, 국가유공자 중 저소득층이다.
어르신들이 이용하는 마을 경로당이나 마을회관에 뜰방을 설치하는 것도 가능하다.
영동군은 매년 군민의 반응, 효과를 꾸준히 파악하면서 사업을 확대할 방침이다.
군 관계자는 "어르신은 물론 장애인을 포함해 주거 약자들에게 복지 혜택이 골고루 미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